매일신문

버섯공장, 인화물질 뒤덮인 '시한폭탄'

11명 사망 1명 실종에 5명이 중상을 입은 청도 대흥농산 화재참사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무시한 채 막무가내식 작업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주의한 용접작업.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 대흥농산 제1사업소 1층 냉각실에서는 용접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냉각실을 뜯어내고 팽이버섯 종균배양실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대흥농산 직원인 김모(30.청도국 각남면)씨는 용접기능사 자격증도 없이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냉각실 천장 부분에 있는 H빔과 이어진 철강재를 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H빔에 단열재로 뿌려져있었던 우레탄. 용접기에서 떨어진 불똥이 우레탄에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불길은 건물 전체의 골격에 해당하는 H빔 전체로 번졌다. 게다가 골격 사이에 벽면용으로 쓰이는 샌드위치판넬에도 불이 옮겨붙었고, 삽시간에 공장 전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종균 배양용으로 쌓아둔 왕겨와 톱밥에도 불길은 옮겨갔다. 한마디로 공장전체가 인화성 물질로 뒤덮인 '시한 폭탄'이었던 셈이다.

우레탄발포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김동성(47)씨는 "석유화학제품인 우레탄의 경우 일단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번진다"며 "단열재로 우레탄을 썼을 경우 불연재로 표면을 덮어야 하지만 1㎡당 8천원선에 이르는 비용 부담 때문에 대부분 사용자들이 꺼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단열재로 쓰이는 우레탄은 대개 난연성분을 12~14% 함유한 상태로 출시된다. 때문에 쉽게 불붙지 않지만 20초 이상 열기가 가해지면 치명적 유독가스인 시안화수소, 일산화탄소를 방출하며 격렬히 연소한다. 그럼에도 불구, 건축법상 단열재로 우레탄을 사용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게다가 불연재로 표면처리를 해야 한다는 강제규정도 없기 때문에 이번 참사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지난 99년 10월 인천 인현동에서 발생한 호프집 참사의 경우 우레탄을 마감재로 사용,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바람에 57명이 숨지고 79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지난 98년 부산 암남동에서 발생한 ㅅ프라자 화재에서도 우레탄이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어 27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경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우레탄 단열재나 샌드위치판넬을 사용하도록 허가한 것부터 문제"라며 "소방당국은 가급적 불연성 소재를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권장일 뿐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어 소방설비를 철저히 갖추도록 지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한편 불이 난 건물에는 소화기 17개, 옥내소화전 9개, 옥외소화전 3개, 유도표지판 22개, 비상조명등 25개 등의 소방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불길이 워낙 빨리 번진데다 유독가스가 자욱해 전혀 제구실을 못했다. 오히려 160여명이 근무하는 건물에 외부와 직접 연결되는 출구는 두 곳뿐이어서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 종업원은 "작업장 소음이 너무 커서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들리지 않을 정도"라며 "대부분 실종자들이 있었던 3층의 경우 화재사실을 뒤늦게 알아 대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경산소방서 이구백 방호구조과장은 "이번 화재처럼 소화기와 비상등이 확보됐다해도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대형화재로 이어진다"며 "특히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실종자들이 유독가스를 마신 뒤 방향감각을 잃는 바람에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의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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