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唐)나라 때 관리를 뽑는 시험에서 인물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던 몸(體貌), 말씨(言辯), 글씨(筆跡), 판단(文理)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체모, 언변, 필적, 문리의 4가지 인물 평가 기준을 중요시 여겨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사위를 고를 때 으레 신언서판의 기준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그 기준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은 외모와 말, 지식과 판단능력으로 90% 이상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원을 뽑거나 중요한 직책 임명시에는 신언서판의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한 조직의 우두머리, 즉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신언서판의 4가지 면에서 두루 뛰어난 사람이라야만 그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요즘같이 오너에 의한 독단적 경영으로 낭패를 보고 있는 기업이나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한 조직에서는 특히 이 신언서판 4가지 덕목을 두루 갖춘 리더십의 부재가 아쉽다.
이 4가지 덕목 중 말(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히 말하면 생각나는 게 단연코 노무현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남긴 말 중에 단연 으뜸가는 것은 젊은 검사들과 대화를 하던 중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 아닙니까?"라고 한 말이다.
남의 말을 곱씹는 것은 좋지 않으나 막가자는 말은 대통령이 쓸 말이 아니고 시정잡배가 쓸 말이 아닌가?
다음으로 "이거 힘들어서 대통령도 못해 먹겠다"라고 했다.
어찌 대통령 자리가 해먹고 안 해먹는 그런 자리인가. 한 나라의 영도자가 못해 먹을 지경이면 백성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다음은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취임한 지 열 달도 안되어 국민투표와 같은 방법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인지 과연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의문시된다.
그 말이 어느 순간의 위기를 면하기 위한 면피용인지 아니면 깜짝 쇼를 하기 위해 한 말인지 알 길이 없다.
어찌 뱁새가 봉황의 뜻을 알리오.
다음으로 대선 비자금 문제가 떠들썩할 때 한 말로 "이회창 후보보다 비자금이 10분의 1보다 더 많으면 하야하겠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함부로 '하야'라는 말을 해도 되는지 국민들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말은 한번 뱉으면 다시 담을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소시민의 말과는 달라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의 국운과 흥망성쇠가 대통령에게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을 어찌 경솔하게 할 수가 있는가? 정말 국민들은 어휘의 선택을 신중히 해주십사고 충언드리고 싶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무게가 실려야 되며 그것은 곧 공약과 같은 효력이 될 거라고 국민들은 믿기 때문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다가오는 새해에는 듣기 좋은 말 신나는 말들을 대통령을 통하여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이근철(대구시 비산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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