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노 대통령의 성탄 기도

이틀 밤만 더 자고나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저무는 한 해를 보내는 성탄과 세모의 기도에는 누구나 참회와 다짐들을 간절히 담는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각박 할수록 그렇다.

그래서 올 성탄 기도들은 너나없이 여느 해보다 유난히 길고도 절실할 것 같다.

한때 가톨릭 신자였던 노무현 대통령께서 성탄 기도를 올린다면 어떤 기도가 될까. 그분이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성탄절 하루만이라도 이런 기도를 바칠지 모르겠다.

'하느님,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누구나 큰자리에 처음 앉으면 그렇듯이 저 또한 1년전에는 개혁과 새 정치실현이란 염원과 다짐이 누구보다 강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수의 국민과 언론은 왠지 저를 탐탁잖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저를 따르고 환호해주던 노동계 마저 반쯤 돌아 앉아있고 경선에서 저를 밀어준 옛 정치 동지들은 야당과 한속이 돼 하루가 멀다하고 배신자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가 2만달러 소득 올려보겠다고 하니까 경제계는 입을 가리고 웃는듯 하고 서민들은 박수는 커녕 IMF때보다 못해졌다는 원성만 높아갑니다.

제가 변호사 경력에 걸맞게 멋진 말들만 한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거꾸로 부적절한 말이라느니 제발 입조심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달라고들 핀잔을 줍니다.

왜 노사모나 KBS나 386코드 부하들처럼 저를 곱게 봐주지 않는지 저로서는 억울할 뿐입니다.

제가 지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이방인 같은 지도자라는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어저께는 노사모 집회에 가서 실컷 하고 싶은 말 해봤습니다.

아직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도 하고 승복 않는 세력들을 XXX라고 육두문자로 대신 공격해주는 노란 목도리의 지지자와 '떡밥' 이야기도 했습니다.

거기 가니까 모두들 저보고 잘한다고 박수치는데 왜 야당과 언론은 저더러 노사모 회장인지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모르겠다고 이죽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도 노사모를 보시고 KBS 들어보십시오. 도대체 제가 뭘 잘못하고 있습니까.

혹 하느님께서는 제기도를 자만에 찬듯한 변명의 기도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기도 대신 이런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신임투표'니 '10분의 1 사임', '시민혁명' 같은 벼랑끝 용어나 칼날같은 말들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망함은 지도자의 덕목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저의 측근들이 부패와 비리로 감옥에 간 것 또한 포용과 화합의 충고를 외면하고 코드인사에만 집착한 패거리 정치의 결과물임을 반성케 도와주소서.

또한 시민혁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식의 전투적 사고를 버리지 못함으로써 다수 국민을 적대(敵對)적 존재로 남겨둔 것 또한 화합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깨닫게 해주소서. 스물두명의 장관 중 7명이나 F학점 평가를 받고 C학점을 겨우 넘긴 장관이 단 두명밖에 안되는 아마추어 내각을 꾸려놓은 것 역시 코드정치탓이며 장.차관이 할일까지 미주알 고주알 나서서 입대기 좋아한 저의 큰 탓임을 되새기게 하소서.

또한 이 나라가 이나마 밥 안굶고 버텨나가는 것이 '우왕좌왕(右往左往)'으로 비유된 참여정부의 공(功)이 아니라 경제계와 근로자의 피땀 덕분임을 아는 겸허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헷갈리는 노사정책과 울며 겨자먹기로 대선자금 뜯긴 경제계를 벌집 쑤시듯 뒤지는 수사가 2만달러의 꿈을 거꾸로 깨고 있는거나 아닌지도 성찰케 하소서. 제가 아끼는 여성장관조차도 부적절하다고 꼬집은 '10분의 1 사임'약속을 두고 백성들이 겨묻은 개와 뭣 묻은 개의 비유로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저의 귀를 밝게 해주시고 오십보 백보와 십보 백보의 차이야말로 오십보 백보이며 바늘도둑이나 소도둑이나 다같은 도둑임을 자각케 해주소서.

어제있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인사가 전문인을 발탁한 인사였다지만 386비서 들을 대거 총선에 출마시키기로 한것은 행여 제 속마음이 아직도 콩밭(총선)에 가있는 탓은 아닌지도 살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모든 열정이 오직 국정에만 전념케 제 마음을 비워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이제 한 해가 저뭅니다.

오늘 저의 기도를 통해 제 눈과 가슴과 귀를 밝고 크게 열어주시고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내려주시며 나의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믿음과 사랑속에 이 나라를 희망의 나라로 이끌 수있도록 큰 지혜와 큰 가슴을 주소서… 아멘'.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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