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신! 아줌마'팀 경로당 사진 촬영 현장

"참하게 해주소".

"아이고, 형님. 훨씬 젊어 보이고 낫구마".

지난 16일 오후 대구 동구 지저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새색시, 신랑마냥 곱게 화장하고 머리 손질도 하고 사진을 찍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많은 이들이 경기 침체로 웃음을 잃고 있는 연말, 매일신문 '변신! 아줌마' 진행팀은 지저경로당으로 출동(?)했다.

여성이 마지막으로 듣는 호칭인 '할머니'들에게도 기쁨을 주자는 취지로 '할머니, 할아버지 예쁘게 꾸며 사진 찍어드리기' 행사를 진행했다.

연말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지만, 적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작은 기쁨을 드리기도 했다.

"화장하는 건 난생 처음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자도 결혼할 때 화장한다고 하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런 게 있었나요. 사진도 찍어 액자로 선물해 준다니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지저경로당 회장을 맡고 있는 김정수(78) 할아버지는 지난 96년 경로당이 생긴 이후 이렇게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라며 좋아했다.

검버섯의 잡티와 주름으로 덮여 젊은 시절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잠시나마 잊고 지낸 지난 세월속으로 회상에 젖는 듯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씻고 있던 권영직(72) 할아버지는 "모두들 집에 가 어부인한테 큰 자랑거리가 생겼다"며 웃음지었다.

곱게 화장하고 흰 머리를 드라이한 이남출(91) 할머니는 "언제 또 해보겠나" 하며 사진을 잘 찍어달라는 부탁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50여명이 출퇴근(?)하는 지저경로당은 남녀 공간이 확연히 구분돼 있다.

1층은 할머니, 2층은 할아버지들의 공간. 부부가 같이 나와도 출퇴근 시간까지 다르다.

할머니들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슬슬 경로당으로 나온다.

같이 점심밥을 해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4시쯤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할아버지들의 출퇴근 시간은 훨씬 늦다.

할아버지들은 집에서 점심밥을 먹고 나온다.

경로당에서 직접 밥해먹기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들의 퇴근시간은 오후 7시. '경로당 질서확립상 퇴근시간은 당분간 오후 7시 정각 시행함. 절대 시간 엄수 요망'. 벽에 걸린 칠판에 큰 글씨로 적혀있는 퇴근시간을 다들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화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즐거운 소일거리. 할머니들은 점 10원짜리 화투를 친다.

한두시간 쳐 100, 200원씩 잃으면 그날은 일진이 안 좋은 것이다.

할아버지들이 치는 화투는 점 50원짜리다.

화투 육백도 치는데 1천, 1천500원씩 잃는 날도 있다.

"부유층·유식층 노인들은 경로당을 도외시합니다.

경로당에서 화투나 치고 뭐하러 가느냐는 말을 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오는 노인들은 경로당이 없으면 갈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경로당에 오면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시간도 잘 가고 몸이 아픈 것도 잊어버린다고.

"우리 나이또래 여자들은 옛날에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갑자기 바뀌어 여자나 남자나 자식들과 같이 안 살려고 합니다.

옛날처럼 나무로 불 때는 것도 아니고 생활문화가 편리하게 잘 돼 있어 내 손으로 밥 해먹고 사는 게 좋습니다".

경로당 노인 대다수가 자식과 따로 살고 있다는 말하는 김정수 할아버지는 효자도 좋지만 부부가 해로(偕老)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고 강조했다.

경로당에는 65세 이상 돼야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60대는 거의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70, 80대. 지난해 할머니 4명, 할아버지 30명이 고인이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복지사회가 안 돼 있지만 구중궁궐(九重宮闕)같은 집 지어줘 모여 놀지…. 경로당 후원회도 말 못할 정도로 잘 해줍니다.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아 비망록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동장을 오래 했다고 말하는 김정수 할아버지는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화장하고 사진도 찍었으니 내년에는 더 젊게 살겠다"며 "갑신년 새해에는 즐거운 일만 있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변신! 아줌마' 코너는 이날 행사에 참여한 6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찍은 사진을 예쁜 액자에 넣어 선물로 드릴 예정이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도움주신 분들: 윤지은(대경대 겸임교수), 송은영('아름다운 사람들' 전임강사), 최남숙('대구 유노아카데미' 전임강사), 정일명(헤어스타일리스트), 김연정('수 헤어라인' 실장), 박태복 한복연구원, 에피소드 스튜디오, 21세기 여성포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