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정열의 성의보감-갱년기

진료과의 특성상 비뇨기과, 특히 '남성' 문제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들 자신도 이런 문제로 의사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상담부터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일수록 병원 문턱을 넘기가 정말 힘든 모양이다.

실제로 상담해 보면 40대 이상 남성들에게 흔한 갱년기의 자연스러운 일부 현상에 불과한데도 당사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한다.

그런가 하면 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방문해 진지하게 의사와 상담을 하고 부부간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경우도 있다.

요즘 말로 '쿨'한 중년부부인 셈이다.

그 중에 인상적인 한 부부가 있었는데 특히 부인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부인은 남편이 남성 갱년기의 자가진단을 위한 설문에 답하고 검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설문지를 읽어본 모양이다.

설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적욕구가 감소되었다 △의욕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근력이나 지구력이 떨어졌다 △키가 줄었다 △삶에 대한 즐거움이 줄었다 △슬프거나 불만이 있다 △발기의 강도가 예전같지 않다 △운동할 때 민첩성이 떨어졌다 △저녁 식사 후 바로 졸린다 △일의 능률이 떨어졌다.

위의 문항 중 첫번째나 일곱번째 문항에 해당되거나, 나머지 중 3개 문항이 해당되면 남성 갱년기의 가능성을 의심한다.

이를 다 읽어 본 부인이 말하길, "선생님,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40대 남자도 있나요", "…"

하기는 그렇다.

이런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포함한 설문이라면 아마 대한민국 40~50대 이상 남성은 거의 다 '갱년기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믿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참으로 우문에 현답이었다.

남편은 검사 결과 특별한 기질적 이상이나 남성호르몬의 감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많이 시도하는 경구용 발기 유발제를 필요에 따라 복용해 볼 것을 권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런 일시적인 약 말고, 꾸준히 장기 치료를 받더라도 예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다른 치료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아이구…. 여보, 제가 모르기는 해도 어디 그런 게 있을라구요. 그리고 몸에 이상없다는데 뭐가 또 그렇게까지 필요해요".

정말 진료비를 의사인 필자가 받아야 할지, 부인에게 돌려줘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남편에게 이상이 없다는 결과에 기뻐하는 부인과 부인을 기쁘게 해 줄 묘약이 없다는 의사의 김빠진 설명에 실망한 남편이 나란히 병원 문을 나서는 모습이 정말 의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탑연합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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