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동물농장

연일 뉴스에 조류 독감으로 닭과 오리들이 무더기로 폐사되고 돼지마저 콜레라에 감염되어 짐승도 사람도 모두 울상이 된 장면을 보아서인지, 간밤에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디선가 닭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자못 비장한 투로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그 닭의 말이 하도 생생하고 절실하여 인간의 말로 옮겨보고자 하나 잘될지는 의문이다.

혹자는 이런 꿈을 꾸면 복권을 사기도 하겠지만, 나는 '매일 신문'에 글부터 쓰니 이것 역시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닭이 한 말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아! 억울하고 원통하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독감 때문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구나. 하루아침에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허망하게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지다니. 새벽부터 일어나 노래하고 알 낳고 1년도 못되는 수명을 천수로 생각하고 살아왔건만, 조물주는 그것마저 길다하여 그것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불명예스럽게 목숨을 거두신단 말인가? 연초에 큰 울음으로 홰를 치고 세상을 깨운 것이 엊그제인데, 그 웅장한 꿈과 포부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일년 사시사철 알을 낳고 한여름 내내 인삼에 살과 뼈를 우려내 지극정성으로 살신성인하여 인간들을 살렸건만, 그 보답이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야속하다, 독감 귀신을 보자마자 우리 모두를 부대 자루에 집어 넣어 구덩이에 파묻으니 오늘 본 것이 마지막 새벽이었던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가족과 친구들이 마지막 몸부림치며 자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때, 아무리 죽을 운명을 타고난 짐승이기는 하나 너무도 기구하지 않은가? 구족을 멸하던 시대가 언제인데. 인권의 발전은 우리 동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단 말인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태어났거늘, 인간이란 두 발 짐승은 네 발 달린 짐승을 핍박하고 마침내는 똑같이 두발 달린 우리 닭마저 모질게 대하는가? 우리의 날개를 샘내서인가? 아니면 견란구시의 성급함을 버리지 못해서인가? 신성하고 즐거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양계장이 하루 아침에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로 변하다니. 하늘의 상제마저 인간의 만행에 진노하시도다.

앞으로 날개 달린 동물은 두 발 달린 동물을 적으로 간주하고 부리와 발톱으로 저항해야 하리라. 자손만대 이 미움을 땅 끝까지 전하리라. 비록 목이 비틀려 죽을지라도 닭은 만물의 영장인즉 명예스럽게 죽어야 하거늘. 독감에 콜록거리며 어지럽게 쓰러져 무더기로 구덩이에 매장되다니. 내 깃털을 뽑아 닭의 역사를 새로 쓰리라. 꼬끼오 만세!

그 순간 갑자기 좌우가 소란해지면서 천둥치듯 무언가가 눈 앞에 떨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리였다.

오리 역시 요즈음 연속극 대장금에서 자주 봐 온 터여서 꿈에 나타난 듯 싶었다.

오리 또한 닭과 마찬가지로 자못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여는데 이날 따라 그의 목소리는 가을 하늘 찬바람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를 연상시켰다.

"유황이란 극약도 마다하지 않고 유사 이래 수 백년 인간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건만 오히려 모함을 당하고 헌신짝처럼 버림을 받지 않나,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해서 꿈의 고향인 낙동강에 멱 한 번 못 감고 허망한 죽음을 당하다니. 무슨 운이 이렇게 지지리도 없는고 게다가 아무 죄 없는 멀쩡한 오리 형제들이 감염된 자와 함께 살았다하여 의심을 받고 연좌제로 죽어가야 하다니, 지금 이 순간 허공에 눌러 쓴 나의 혈서를 누가 읽어줄까? 본래 우리 오리와 닭은 본이 같은 형제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대처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명예를 되찾고 날개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의논해 봄이 어떠하오?"

잠시 의기소침했던 닭이 갑자기 활기를 되찾으면서 하는 말.

"지당한 말이오. 닭이나 오리가 없는 세상이 세상이오? 명예도 찾고 생명도 찾아야지요. 인간 세상도 닭장만큼이나 시끄럽고 오리농장만큼이나 요란스럽지 않소? 우리의 시끄러움 속에는 늘 평화가 알을 품고 사랑이 햇살처럼 가득 하지만 인간들의 우리는 미움과 죽음 뿐이오. 이제부터 두발 달린 짐승은 우리에겐 무조건 원수요, 날개 달린 것은 모두다 친구입니다.

자기 새끼를 엄동설한에 강물에 던지는 것이 사람이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를 한꺼번에. 흉내 낼 것이 따로 있지 날개도 나지 않은 어린 병아리를 훨훨 날게 하다니. 인간들의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니 인간 독감을 조류 독감이라 덮어 씌우는 것은 아닌지? 조류의 조류에 의한 조류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그것이 인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오".

최 병 현 (호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