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작품가치

화가노릇 하다보면 간혹 "실패한 그림 없수? 버리믄 주서 갈라꼬…""불경기에 안 팔린다면서…. 싸게 하나 주소! 놔두면 뭐 할 낍니까"라는, 이런 황송한 주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만약, 가게에 진열된 자전거가 많다고 그냥 한 대 달라한다면 점포 주인이 공짜로 줄까. 단박에 화를 내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처럼 자동화로 만들어낸 물건에도 상응한 대가를 요구하거늘 하물며 화가의 그림은 피를 말리며 그려낸 고도의 정신적 창작물이다.

함부로 싸구려 취급하고 쉬이 얻어가는 물건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남의 월급을 함부로 탐내는 사람이 없듯이 화가가 그린 그림은 직장인이 매달 받는 봉급과 동일하다.

신성한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엄연히 화가라는 직업도 생계를 위하여 일상적으로 하는 일에 속하므로 당당하고 정당하게 작품가치가 인정되는 풍토가 이뤄지길 바란다.

오래 전 작품 구매자와 있었던 일화다.

경기호황으로 사업이 번창하자 집안 꾸미기에 바빴다.

덕분에 필자의 그림도 치장 목록에 끼게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뒤끝은 그리 게운치 못했다.

하루 유흥비로 수백만원을 써댄다면서 그림 값은 그에 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인색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작업실을 찾은 중년신사가 벽걸이용 TV를 기천만원에 샀다며 은근히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다가 왠지 미안했던지 즉흥적으로 그림 한 점을 사겠다고 했다.

결과는 부인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림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산품 또는, 당장에 필요한 생필품쯤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솔직히, 아무리 유명하고 비싼 작품을 집안에 들여놔도 한끼의 허기진 배를 채우지는 못한다.

그야말로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예술품이란 게 일부 부유층의 재산증식수단으로 악용돼 본연의 참뜻을 왜곡시킨 건 사실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인 작품가치로 모든 가정에서 사랑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남학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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