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聖誕과 '나눔'

유태인들의 '자선의 황금 계단'은 베풂의 마음 상태가 천차만별임을 말해준다.

주고 나서 후회하는 단계, 상대방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주는 단계, 요청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단계, 받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서 주는 단계,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모르는 단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을 모르는 단계, 주고받는 사람이 서로를 모르는 단계, 미리 자비를 베풀어 빈곤을 면하게 하는 단계가 그것이다.

자선의 참뜻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을 돕는 마음에 있다.

성서는 이런 마음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올해도 구세군 자선냄비에 사상 가장 많은 뭉칫돈을 넣은 '얼굴 없는 천사'가 등장하는 등 화제가 잇따랐다.

하지만 복지단체들은 후원 포기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외환위기 때보다도 사정이 나쁘다고 한다.

기부금은 지난해의 20%에 불과해 '벼랑 끝'이라는 아우성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우이웃에 대한 규모.실태 등 기초자료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없다.

▲올해 성탄 분위기는 너무 썰렁했다.

캐럴 음반 등 장식품과 이벤트가 지난해보다 7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불황과 어수선한 나라 사정 때문이라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어려운 가운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따스함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의 체감온도는 도무지 올라갈 줄 모르며, 근래엔 하루가 멀다는 듯 자기 중심적 배금주의가 빚어내는 끔찍한 비극들이 잇따르기도 했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마태'는 로마의 헤롯이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두려워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협과 배척을 당하면서도 예수가 태어난 건 낮고 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성탄은 이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이웃과 함께 하는 '나눔'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근본 정신에는 동서가 따로 없고, 그 의미가 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탄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이 느낌대로라면 이 땅에 사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나눔이며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예수는 온몸까지 내던지면서 가르쳐주었다.

올해는 세상이 얼어붙어 성탄 분위기마저 너무 가라앉아 안타깝고, 그 참뜻이 바래지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우리는 정이 많고 따뜻한 민족이라고 자부해 왔으며, 세계가 바라보는 눈도 다르지 않다.

오늘은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면서 나눔을 향해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여는 새로운 시발점이었으면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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