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 해 교육계는 그야말로 혼란과 대립과 상처로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가 연초부터 악재로 불거지더니 보성초교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으로 교육계는 극도의 분열상에 빠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9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11월 수능시험 후에는 갖가지 비판이 쏟아지더니 결국 언어영역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무너져가는 교육계가 그나마 남은 신뢰를 다시 한 번 스스로 깎아내린 사건이자 새해에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NEIS=교육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2001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오던 NEIS는 그동안 전교조 등의 집중적인 문제 제기를 받아왔다.
27개 영역 가운데 교무.학사, 전.입학, 보건 등 3개 영역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보안 문제 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현장 교사와 전교조 등의 강한 반발로 3월 시행이 미뤄지더니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권고함에 따라 재논의 도마에 올랐다.
혼란이 깊어지자 NEIS 문제는 교육부를 떠나 국무총리실 교육정보화위원회로 맡겨졌다.
위원회는 한해가 끝나가는 지난 15일에야 문제가 된 3개 영역을 별도 시스템으로 구축, 운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천안초교 참사=2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3월26일 충남 천안초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잠자던 축구부원 25명 가운데 9명의 어린 목숨이 스러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불이 13분만에 꺼졌음에도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가 열악한 시설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불이 난 합숙소는 지어진 지 10년 된 1층 건물로 환기 시설이 모자라고 출입문도 비좁아 사망자 대부분이 질식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학교 합숙 시설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고 시설 개선도 추진됐으나 학생들을 위협하는 안전 불감증은 아직 치료가 요원하다.
▲윤덕홍 장관 9개월만에 사퇴=새로 출범한 참여정부의 첫 교육 수장에 오른 윤덕홍 장관은 취임사에서 "장관을 뺑뺑이 돌리지 말아달라"고 주문했으나 교육 관료들의 낡은 틀을 깨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NEIS 문제로 인한 혼란, 보성초교 교장 자살 사건으로 빚어진 교육계 분열 등에 이어 수능시험 복수 정답 인정 파문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순탄하지 않은 날들을 보내던 윤 장관은 9개월여만에 스스로 자리를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같이 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지만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려는 교육 관료들, 분열에 빠진 교육단체들, 이를 빌미로 사퇴를 강요하는 보수 언론에 이르기까지 지방대 총장 출신의 그에게 쏟아지는 창날은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전교조 반미 교육 논란=지난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 사건과 촛불시위는 올해 이라크 전쟁과 맞물리면서 교실 수업의 주제로 연결됐다.
특히 한국군 파병과 관련해 많은 교사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연초부터 교육계 안팎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논란의 빌미는 전교조의 반전평화 공동수업 자료집 내용 일부. 보수 진영이 이를 학생들에 대한 반미 세뇌작업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반미 목적이 아니라 반전평화 SOFA 개정 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동등한 국가관계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집요한 문제 제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조사 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논란이 더욱 가열됐다.
▲보성초교 서승목 교장 자살=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강요하고 전교조 비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사과 요구를 받아오던 초등학교 교장이 4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교육계는 명확히 갈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전교조를 비난하는 교원.학부모단체들의 성명이 잇따랐고 교원들 사이에조차 분열상이 나타났다.
한국교총, 교장단협의회, 일부 학부모단체 등은 적극적으로 전교조를 비판하는 성명, 논평 등을 발표했으며 단체 행동까지 벌일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전교조의 개혁을 요구하는 글들이 전교조 인터넷 게시판에 이어졌고 감정적인 비방도 오가는 씁쓸한 모습이 장기간 계속됐다.
전교조는 애도 표명과 함께 교육 현장의 잘못된 관행과 대립으로 빚어진 결과를 호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생, 학부모들로서는 가뜩이나 무너진 공교육이 내부 싸움까지 벌이는 모습에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수능 복수 정답 인정=해마다 있었던 일이지만 올해처럼 수능시험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출제위원 정보가 사전 유출됐다는 비판에서부터 출제위원 선정의 공정성 시비, 출제진들의 수험 관련서 발간 등 비판이 잇따랐다.
언어영역, 과학탐구영역 등에서 정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수능시험 출제를 맡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결국 오답시비가 가장 컸던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대해 당초의 3번 외에 5번도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94년 수능 도입 후 처음 있는 일로 수능시험의 신뢰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종승 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나 내년 수능은 올해보다 출제위원 선정이 더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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