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정권은 몽고의 침입에 결사항전을 선언하며 강화 천도를 단행했다.
우리는 이번 강화 천도를 액면 그대로 야만족에 대한 결사항전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선 300여년 도읍을 하루아침에 버린다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강화 천도의 이유로 밝힌 결사항전은 현재로선 공염불에 불과해 보인다.
결사항전을 위한 강화 천도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고려 군대의 취약함에 있다.
수십 년 동안의 무신 집권으로 고려 군대는 이미 사병화했다.
이런 군대에게 대규모 국토수호 전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몽고군의 위력과 잔학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화전 양면전술을 구사했어야 함에도 최씨 정권은 결사항전을 천명했다.
몽고의 요구가 워낙 터무니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최씨 정권의 대응은 미흡했다.
우선 백성들을 항전체제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을 덜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최씨 정권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수탈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정부는 강화에 새 성을 쌓아야 한다며 백성을 쥐어짜고 있다.
오랜 전쟁과 조정의 수탈에 지친 백성들의 몽고 투항은 당연한 결과다.
민족도 자존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은 우선 살아야 한다.
백성들은 정치권의 강화 천도를 몽고에 대한 대책 없는 선전포고로 생각하고 있다.
수도를 강화로 옮김으로써 몽고군은 내륙에 대한 약탈과 살육을 더욱 강화했다.
강화 천도 후 개경에 남아 있던 백성들이 봉기한 것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강화천도반대' 시위에 나선 이들은 도읍을 강화로 옮긴 것은 지배층이 자신들만 살겠다는 짓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강화 정부는 육지에 남아 몽고군에 항전하는 군민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전공이 큰 자는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높이 포상하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충주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백성들이 오히려 천대받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가 천대와 멸시라면 누가 나서서 싸우겠는가. 최씨 정권이 진정 몽고와 결사 항전할 용의가 있다면 강화도에 궁궐을 지어 도망할 것이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육지의 전장으로 나와야 한다.
전장에서 백성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할 때 국난을 극복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씨 정권의 강화천도를 몽고 침입으로 약화된 무인정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 다면 지나친 비난일까.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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