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창구기자의 환경미화원 체험

온갖 죄로 오염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일은 종교를 떠나 세상 사람들의 축제일이 됐다.

떡과 과일 등 작은 선물을 들고 고아원, 양로원을 찾아 사랑을 나누며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탄 의미를 생각하는 이벤트 마련에 분주했다.

성탄 전야, 또 다른 의미로 더럽혀진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이들을 만나봤다.

밤새 악취며 칼날 같은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구슬 땀을 흘리는 환경미화원들.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아침 출근길 깔끔하게 치워진 거리를 걸으며 상쾌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성탄전야에도 그들은…

지난 24일 오후 8시쯤 (주)군위환경(대표 박영춘.朴永春.47.군위군 군위읍)을 찾았다.<

"밤새 악취와 추위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환경미화원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니 그만 두시죠". 만류하는 박 사장을 설득해 "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따뜻한 옷을 많이 껴입고 나오라"는 허락을 얻었다.

막상 허락을 받고 보니 입대를 앞둔 사람마냥 긴장됐다.

가뜩이나 육중한 몸에 영하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터운 상의를 삼중으로 껴입고, 점퍼를 걸친 뒤 귀마개와 마스크로 완전무장하자 스스로 생각해도 꼴불견이 됐다.

새벽 1시쯤 도착해 비닐로 코팅한 장갑과 안전모를 받았다.

15년 경력의 베테랑인 나성찬(48) 반장과 한조를 이뤘다.

먼저 도착해 이미 골목을 한바퀴 돌아 대문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리어카에 잔뜩 실은 뒤 도로가에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겸연쩍은 모습으로 잠시 머뭇거리다 "잘 부탁 합니다"라며 인사를 한 뒤 리어카에 담긴 쓰레기를 내리는 작업을 도왔다.

"그렇게 무작정 쌓아두면 안됩니다.

대충 분리해 두고 상자류는 뜯어서 차곡차곡 쌓아 끈으로 묶어야 부피도 줄고 바람에 날리지 않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 반장은 기자가 쌓아둔 상자를 뒤집어 빈병.플라스틱.종이.의류 등 10여종의 쓰레기를 인도에 쏟아버렸다.

괜시리 일만 더 만든 셈이 돼 버렸다.

수거후 다시 종류별 구분

매립용.소각용.재활용 쓰레기를 각각 구분한 뒤 재활용품은 다시 종류별로 정리해 새벽 5시쯤에 도착하는 수거차에 싣도록 준비하는 것이 1단계 작업이다.

나 반장은 숙련된 기능공처럼 손놀림이 매우 민첩했다.

곁눈질로 훔쳐보며 서투른 솜씨로 따라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시후 군청 환경미화담당 홍광세(48)씨가 현장에 나왔다.

기자가 환경미화원 체험을 한다는 소식에 모른 척할 수 없어 나왔다는 말에 괜히 애꿎은 사람까지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든든한 원군을 얻어 힘이 났다.

골목에 쌓아둔 쓰레기더미에는 부서진 철책상.쌀통.싱크대를 비롯, 옷 가게에서 버린 듯한 마네킹 등 무겁거나 부피가 큰 대형 폐기물도 많았다.

"대형폐기물을 이렇게 버려도 됩니까". 홍 담당에게 물었다.

"비닐 봉지에 담을 수 없는 대형 폐기물을 버릴 때는 반드시 신고한 뒤 스티커를 붙여 배출하도록 홍보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주인을 찾을 만한 흔적이 없는데다 도로가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다음날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지요".

리어카 한 대 분량의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30분 가량 걸렸다.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가 실시된 지 9년째인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환경의식 수준이 아쉬울 따름이다

여름엔 악취.겨울엔 추위

시간이 한참 흘렀다.

몇 개의 골목 쓰레기더미를 정리하는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듯 동작은 빨라졌지만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신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가 고통스러웠다.

"한여름 악취에 비하면 겨울 추위는 양반이지요. 눈비가 오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입니다". 대부분 상가의 불빛이 꺼진 새벽 2시쯤 됐을까. 포장마차.호프집.주점의 불빛만 아련히 남은 거리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뭔가를 속삭이며 성탄을 즐기는 청춘 남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마차에 가서 어묵 국물로 몸이나 좀 녹입시다". 기자의 속내를 알아차린 것일까. 홍 담당의 말이 반갑기 그지없다.

포장마차에 앉아 뜨끈한 어묵 국물을 마시는 동안 환경미화원 경력 15년째인 나 반장의 '쓰레기로 보는 세상' 강의가 이어졌다.

일도 일이지만 말솜씨도 일품이다.

"활동이 많은 여름철에 비해 겨울철은 쓰레기량도 3분의2로 줄고,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않으면 더욱 쓰레기량은 줄어듭니다.

쓰레기의 양과 질을 보면 생활을 엿볼 수 있죠. 게다가 재활용품 분리 여부와 뒤죽박죽 섞인 쓰레기를 보면 그 집안의 가풍이나 분위기도 엿볼 수 있습니다".

*서리탓에 장갑도 얼고

군위읍소재지의 1단계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새벽 5시. 수집운반차에 쓰레기를 싣기 위해 읍에서 20km 떨어진 의흥면으로 갔다.

이동하는 동안 차내 바깥온도 측정기로 보니 영하 7℃다.

정만영(41)씨와 건강이 좋지 않아 결근한 직원을 대신해 하루 5만원을 받고 나온 임시근무자 박대식(42)씨가 함께 작업에 나섰다.

차가 멈추면 재빨리 뛰어내려 소각용과 매립용으로 구분해 싣고 차량 뒷부분에 설치한 안전대에 메달리기를 반복하는 작업. 한동안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안 숨이 턱에 찼다.

쓰레기봉투마다 하얗게 내린 서리 탓에 젖은 장갑은 금세 얼었고,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심한 통증은 전신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종량제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수많은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양이들이 찢어버려 음식찌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환경미화원은 사명감이 없으면 못합니다.

별다른 요령은 없어요. 그저 부지런하고 성실한게 최고의 요령이죠". 함께 작업을 한 이종환(49)씨는 더러운 곳을 깨끗이 청소한 뒤 주민들로부터 칭찬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쯤 군위읍 쓰레기매립장에 도착했다.

나 반장 등 6명의 환경미화원은 밤새 수거한 재활용 쓰레기 분리작업과 소각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소각로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비닐봉지 속의 우유팩을 가리키며 이영찬(48)씨는 "우유를 마신 뒤 물에 한번 행궈서 버리면 좋을텐데, 팩 안의 우유가 썩는 바람에 재활용이 안된다"고 했다.

1단계 작업을 통해 골라온 재활용 쓰레기 중에도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가 가득 섞여있다.

열악한 조건에 부족한 인력으로 매일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이 정말 안타깝게 여겨졌다.

첨단 재활용쓰레기 선별기계가 빨리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각때 부탄가스통 폭발"

물론 각 가정부터 재활용 쓰레기를 잘 분리해서 배출한다면 환경미화원들의 일손을 절반 이상 덜고, 그만큼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쓰레기봉투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깨진 유리. 쇠조각 등으로 다쳐 고생한 적도 많다"는 김병문씨는 "지난 여름 소각로에 쓰레기를 태우다 부탄가스통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와 얼굴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고, 소각로 투입구 문을 닫고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소각로에 몰래 버려진 가스통이 터지는 바람에 문이 열리며 쓰레기더미에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고통과 긴장감 속에 재활용 분리와 소각작업은 오후 3시쯤 돼서 대충 마무리됐다.

무려 13시간 가까운 노력이 들어서 사람들이 마구 내다버린 쓰레기 처리가 끝난 셈이다.

무엇보다 현대식 쓰레기종합처리장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쓰레기매립장 설치도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밤만 되면 각종 생활쓰레기를 아무데나 담아 몰래 버리는 얌체 환경의식이 환경미화원들의 하루를 더욱 고달프게 한다.

환경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은 절대 없다는 생각을 짧은 하루의 체험을 통해 얻게됐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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