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진으로 폐허된 밤市 르포>

지옥이 따로 없었다.

지진의 공포가 휩쓸고 간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의 고도(古都) 밤시(市) 주

민들은 26일 슬픔과 절망감에 몸부림쳤다.

구호요원들이 간간이 보였지만 도로가 끊어지고 장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구조작

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했다.

거리 곳곳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산산이 부서진 진흙 벽돌들은 오히려

구조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다.

생존자들은 폐허가 된 거리를 헤매면서 도와달라고 외쳐댔다.

알리라는 이름의 한 남자는 "친척 17명이 무너져 내린 건물더미에 깔려 있다.

빨리 꺼내지 않으면 곧 죽는다"고 울부짖으면서 온갖 힘을 다해 삽으로 잔해를 헤쳤

다.

골목 다른 쪽 끝에서는 10여구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밤시의 도로 곳곳은 시체로 가득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했다.

이번 지진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됐다.

무너진 가옥은 그렇다 치더라도 2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밤 성채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왜 이리 구호의 손길이 더딘 지 모르겠다. 이번 지진이 서방세계에서 일어났으

면 모든 지원 수단이 동원됐을 것이다."

한 생존자는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생존 주민들은 흙더미 속에 갇혀 있을 형제자매들을 구조하러 나섰지만

손에 든 것은 삽 같은 원시적인 연장뿐이었다.

먼지로 하얗게 변해 버린 검은색 베일을 두른 한 노파는 "마실 물도 먹을 식량

도 없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구호조치가 늦어지자 점차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밤이 되면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밤시를 엄습했다.

요란한 앰뷸런스 사이렌 속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것은 밤시의 중앙도로를 달

리는 차량, 바로 시체를 넘칠 만큼 실은 밴이었다.

하늘에는 이곳에서 180㎞나 떨어진 케르만 주도(州都) 소재 병원으로 부상자들

을 실어 나르는 헬기들이 보였다. 이제 더이상 밤에는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다른 한 쪽에서는 불도저가 대형 공동묘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묘지가 만들어지는대로 생존자들은 지진의 공포를 안고 숨져간 사람들을 염습(

殮襲) 절차 등 이슬람 전통 장례 풍습을 생략한 채 그대로 묻었다.

죽은 자가 너무 많아 장례절차를 제대로 따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탓이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아들, 딸, 아버지, 엄마의 시신이 흙더미에 또다시 묻히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밤 시민들은 음식과 거처도 없이 이 추운 밤을 유령의 도시에서 또 보내야 한다.(밤 AFP=연합뉴스)

(사진설명) 세상에서 가장 슬픈키스. 한 이란여성이 이번 지진으로 희생된 자신의 딸아이의 이마에 작별의 키스를 하고 있다. 이 아이는 26일 이번 지진으로 희생되었다. 이번 강진은 밤시의 전체 시민 8만∼9만명 가운데 4분의 1 이상을 희생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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