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새해엔 희망이 생기겠죠…'.
한해가 저물어가는 28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3동 외국인노동상담소. 건평 50여평의 낡은 집안으로 들어서자 벽난로 주변에 20여명의 이방인들이 모여 앉아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집 전체를 통틀어 난방기구는 이 난로 하나뿐입니다.
서로의 체온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셈이죠". 외국인상담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경태 목사는 "하루 버티기가 힘든 이들에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했다.
지난달 16일 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에 들어간 이후 대구외국인상담소에는 스리랑카와 필리핀, 중국, 방글라데시 출신의 불법외국인체류자 38명이 아직도 '기약 없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한동안 50명이 넘는 외국인이 머물기도 했지만 지방으로 몸을 피하거나 단속을 무릅쓰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수가 줄어든 것.
이들의 하루하루는 말 그대로 '철창 없는 감옥' 생활이다.
'강제 송환'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은 24시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먹고 자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얘기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 식사는 외부의 자선단체에서 보내준 쌀과 야채, 빵 등으로 하루 두끼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추위는 허기보다 더한 고통이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지만 온기 없는 방에서 누더기 같은 이불을 몇겹씩 덮고 자는 것이 난방의 전부다.
필리핀 여성 아이미(가명.30)씨는 "겨울이 오니 너무 춥다"며 "돈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생활을 할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방이 좁아 잠도 교대로 자고 있다.
2층 침대가 양쪽에 놓인 방에서 생활하는 스리랑카인들은 8명이 2교대로 잠을 자고 있으며 6명의 중국인들도 2명이 한 침대를 같이 사용하거나 바닥에서 생활을 하는 실정. 한국에 온 지 4년이 넘었다는 한 중국 여성(36.길림성 연변)은 "남녀 구분없이 한 방에 머물 수밖에 없어 너무 불편하다"면서 "16명이 생활해야하는 곳에 38명이 있으니 어딜가도 서로 부딪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
스리랑카 출신 모하메드(가명.32)씨는 "2개월 전까지는 월 80만원을 벌어 가족에게 50만원을 주었는데 돈이 떨어져 얼마전엔 목걸이를 팔아 집에 돈을 조금 부쳐주었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곳에 모여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모두 한국을 떠날 수 없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다.
김 소장은 "현재 대구에만 2만여명의 미등록 근로자가 더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일시적인 단속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낯선 한국의 겨울은 춥고 길기만 해 보였다.
그래도 절망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에게서 진한 '삶의 끈기'를 느껴며 문을 나섰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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