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징비록'과 대구시

"시정 홍보는 가급적 좋은 것만을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대구시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2003년 시정 주요성과'라는 홍보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50쪽이 조금 넘는 이 책자에는 분야별로 성과를 보인 항목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는 대구가 세계 속의 경쟁력 있는 국제도시로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조성과 지역 전통산업의 구조 고도화를 통한 지역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이다.

시는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이처럼 10개 분야별로 주요 성과들을 나열하고 장밋빛 업적들을 길게 늘어 놓았다.

물론 대구시가 올 한해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겪고 역경을 헤쳐 나온 것도 사실이다.

세계 10대 뉴스에 손꼽히는 사상 최악의 대구지하철 참사를 맞은 것을 비롯, 대학생 축제인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세계 어느 도시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훌륭히 치러내는 등 국내 어떤 시.도보다도 한층 혹독하고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해 냈다.

그러나 대구시는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잘못과 실수, 그리고 행정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후유증 때문에 시달려 왔음도 역시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쓰라린 경험과 교훈에 대해서는 뼈 아프게 반성하고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각오와 다짐'이 있어야 하는데도 이런 부문에는 일부러 애써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대구시의 이같은 배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대구시와 달리 대구의 검찰은 최근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한 백서를 발간하고 현장보존 등 수사지휘와 관련, 자신들이 한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고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경북 청도의 버섯공장에서 대형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곧바로 검사를 현장으로 보내 지휘하는 기민한 대처능력을 발휘했다.

조선조때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유린당한 뒤 서애 류성룡은 후손들이 과오를 또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임진란 당시 정부나 관리의 잘잘못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징비록의 교훈은 무엇일까. 지하철 참사 등 잊고 싶은 사건이 수습된뒤 그간에 저질러진 잘못과 실수도 기록으로 한번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oxe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