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고속도에도 명예가 있다

히틀러가 집권한뒤 맨먼저 착수한 국가경제 부흥사업중 하나는 고속도로 건설이었다.

70년전인 1933년 세계적인 아우토반(Auto bahn)을 건설했을때 당초 목적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한 실업자 구제였으나 주변국 침공을 위한 군용도로의 확보가 숨은 목적의 하나였다.

실제 프랑스 침공때는 독일의 초고속 진격에 프랑스군 군용트럭의 전선도착이 지체되자 파리 시내의 거의 모든 르노 택시들이 병사들을 싣고 '총알택시' 지원을 한 전사(戰史)가 파리 전쟁박물관에 기록돼 있다.

비록 독일의 고속도로가 독재자의 작품이긴 하지만 히틀러 패전후 독일경제를 일으켜 세워 '독일부흥의 아버지'로 불린 에르하르트 총리조차 "나는 차를 차고 아우토반에 들어설 때마다 도로에 대고 경례를 한다"고 했을 정도로 고속도로가 한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엄청나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35년전 독일 방문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했을 때도 우리 경제규모는 국가총예산이 고작 1천643억원인 초라한 나라였다.

당시 독일을 본떠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던 일본의 고속도로 건설비용이 ㎞당 8억원 이었으니까 서울~부산간 428㎞를 건설하려면 3천600억원, 국가 예산의 2배가 있어야 했다.

그것을 박 대통령은 8분지 1비용으로(1㎞당 1억원) 2년5개월만에 완공시켰다.

2년6개월 동안 대통령이 직접 공사현장에 나타난 것이 33번, 거의 매달 한번꼴로 공사장을 찾은 셈이다.

1970년 7월 7일 서울도 부산도 아닌 바로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5만명이 운집한 준공식이 열렸을때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두고 '우리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로 다져진 민족적 예술작품'이라 자평했다.

34년이 지난 지금 아직 우리의 고속도로망은 1만㎞가 넘는 독일이나 7만여㎞인 미국, 약 8천㎞의 일본에 비해 미흡하다.

2011년 목표가 겨우 4천820㎞니까. 그러나 고속도로의 평가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도로의 길이가 짧고 긴 것이나 건설시기에서 누가 앞섰고 뒤졌다는 것보다는 고속도로 교통문화의 수준이 어떠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민족적 예술작품'같은 고속도로를 어떻게 잘 이용하고 관리하며 경제발전에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아느냐는 국민역량에서 고속도로의 가치가 평가돼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구미에서 동대구까지의 고속도로구간이 왕복 8차로로 넓혀지자마자 폭주차량이 급증하고 교통사고가 빈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게다가 경찰은 무인단속기만 더 달아 불법 과속운전자들을 잡아보겠다는 식이다.

33년간 4차로만으로 갑갑하게 다니다 확 트인 8차로가 나타나니까 자동차 성능도 좋겠다 신나게 밟아보겠다는 충동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기야 모든 고속도로상의 차들이 독일처럼 시속 200㎞이상이라도 차로만 지키면서 다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이론적으로는 사고 날 일도 없고 오히려 고통소통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실제 70년초 오일 쇼크 당시 유류절약을 위해 독일 아우토반 최고 속도를 120㎞로 제한했더니 도리어 고속도로가 체증으로 마비되다시피 했다는 일화는 고속도로 교통문화라는 것이 꼭히 속도만 낮춘다고 사고가 없어지고 교통순환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님을 증명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고속도로 이용 효율'이 일본에 비해 절반수준이라는 점이다.

고속도로 사고의 25%가 갖가지 제한, 규제, 인터체인지 진입시설과 방법, 보수공사의 체계, 안내판 미비 등 '교통장애'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속도로 교통문화는 도로 길이나 건설시기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운전자나 관리자들의 소양과 준법의식, 관리능력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욱이 무인단속기만 계속 늘려나가는 적발 단속위주의 대응도 선진국의 고속도 교통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무인단속기 한대 설치비용이 3천만원이라는데 지난 4년간 전국에 설치한 단속기는 2천373대, 700억원이 투입된 셈이다.

그래도 무인단속기에 걸린 고속위반자는 매년 평균 1천만명, 단속기 증설에 비례해 줄지 않고 있다

'민족적 예술작품'이란 긍지와 찬사가 무색해진다.

천억단위의 단속기 설치 예산 들여가며 국민들을 이중적인 범법인격체로 만들어나가는 처벌중심의 계도도 문제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과속위반자를 연간 1천만명씩 양산해내는 후진국형 교통문화를 함께 바꿔 볼때다.

고속도로에도 그 나라 국민의 명예와 긍지가 나타난다.

무인단속기만 증설할게 아니라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를 120㎞쯤으로 현실성있게 조절하거나 신규고속도로는 상하행로를 따로 멀찍이 띄워서 건설하는 합리적 교통정책을 생각해 가며 고속도로위에서도 문화국민의 명예와 긍지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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