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다음으로 널리 쓰이는 것이 호다.
당나라의 시인인 이백이나 송나라의 문장가 소식은 이름 보다 호인 태백(太白), 동파(東坡)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호는 조선시대에 학자들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많아지면서 일반화됐다.
이름보다 호를 불러주는 것이 예의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호 사전인 호보(號譜)들이 다수 편찬되기도 했다.
호에는 집안에서 쓰는 당호(堂號)와 시.서.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의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는 예가 많다.
▲작호양식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자신이 거처하는 곳이나 좋아하는 장소를 따서 짓는 방식이다.
그 외에 지향하는 뜻을 밝히거나,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31살 때 경주 남산 금오산에 들어가 초당을 짓고 산 김시습은 초당 이름(梅月堂)을 자신의 호로 남겼다.
영천 출신인 박인로는 늘그막에 경주시 산내면 노계(蘆溪)곡에 들어가 살면서 노계라는 호를 지었고, 서울 태생인 박지원은 은거지인 황해도 연암(燕巖)골을 호로 삼았다.
▲이이, 임제, 허균 등도 마음에 묻어둔 땅이름, 물이름이 있었다.
파주군 파평면 율곡(栗谷)리 출신인 이이는 고향마을을 평생의 지칭으로 했다.
임제는 외갓집 앞을 흐르는 섬진강 지류인 백호(白湖)를, 허균 역시 외가마을 산자락인 교산(蛟山)을 호로 삼았다.
전라 담양의 송순은 60세에 지은 면앙정 정자를, 정철은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의 작은 개울(松江)을 자신의 상징으로 했다.
▲새해가 모래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것이 없다.
새해 맞이에 있을 법한 덕담이나 미담은 약에 쓰려해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의 구정물이 온 사회를 흙탕으로 만들고, 조류독감에 광우병이 미친 사회를 더 어지럽힌다.
격조와 품위를 잃은 현대사회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인생의 지침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한갓 미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호가 없다.
재야 변호사 시절 '노변'이 별명이었고, 노사모 등장 이후에는 '노짱'으로 바뀌었다.
노짱은 인생의 지침도 아니고, 특정 장소나 애호물도 아니다.
그래서 노짱이란 별명과 관련해 어떤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비약일지 모르나 우리 정치 수준이 이런 품격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노 대통령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저기에는 김짱이 있고 이짱, 박짱, 최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운수가 안 풀리면 개명을 한다고 한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아호를 가져 품격의 정치, 희망의 정치를 다짐해보면 어떨까.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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