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신년사-새 정치 문화 창출로 경제부터 살리자

2004년 갑신년(甲申年)의 새 아침이다.

새해에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이끌어내고, 곤두박질해 온 경제를 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관심은 나라를 일으켜 세울 정치 구조의 변화와 경기 회복에 쏠려 있다.

대선 이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수면 위로 떠오른 불법 선거 자금에 검찰이 메스를 대고 있지만, 이 문제의 투명성은 반드시 확보돼야 할 것이다.

나라가 새롭게 일어서려면 먼저 '돈 정치' '돈 선거'부터 단죄해야 한다.

비자금.불법 정치자금 등으로 고질화된 정경 유착의 고리 끊기는 정부와 정치권의 시급한 과제다.

정치권이 저열한 싸움에서 벗어나 개혁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내부의 위선부터 깨끗이 물리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 바로 세우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감을 회복하고, '못해 먹겠다'가 '잘해 보겠다'로 바뀌어야 한다.

본사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했다'는 평가가 고작 21.9%에 지나지 않으며,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앞으로는 '코드' 맞추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현실화시켜 나가는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는 4.15 총선이 있는 해다.

정치인들은 돈 안 드는 선거, ㅔ?자금의 투명화 등을 통해 거듭나면서 국민의 믿게 하고, 그런 기반 위에서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절반이 '지지 정당이 없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염증은 심각하다.

그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임도 깊이 새겨야 한다.

지금 다각적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정당들이 총선 때까지 공천 등 내부 개혁을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유권자들 역시 이번 총선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본사 여론조사에서 '정치권 물갈이 필요'가 무려 78.5%이며,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 32.2%, 열린우리당 6.7%, 민주당 4.2% 등으로 나타났듯이, 이젠 낡은 정치로는 곤란하다.

지역주의 기반의 정당 구도도 크게 완화되는 분위기다.

정치권이 사는 길은 낡은 정치 소프트웨어를 부수고 투명한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길임은 자명하다.

지방 분권 원년인 올해는 50년 넘게 계속돼 온 중앙집권의 벽을 깨고 지방 분권으로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도 찾아야 한다.

지난해 연말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조치법 등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부가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사문화가 되지 않더라도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지방의 발전 없이 국가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지방화 시대를 열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구.경북은 상생(相生)의 동반자로서 새 시대가 요구하는 성장 동력을 찾는 등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

지난해는 경기 침체와 조기 명퇴 바람으로 '삼팔선(38세 명퇴)',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에다 청년 실업 사태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까지 보태졌다.

새해에는 이런 조어들이 사라져야 한다.

국내 연구기관들이 앞다퉈 올해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2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 하나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가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전투구식 정치 공방이 이어질 경우 국가적 혼란은 물론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도 증폭될 건 뻔한 일이다.

우리 경제는 정부.가계.기업 할 것 없이 신용불량으로 치달아 왔다.

중산층이 무너진 지는 오래고, 빈부 격차도 날이 갈수록 벌어지며, 청년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노동 가치관의 미확립이 큰 요인이다.

3D업체 회피, 고임금 지향으로는 고용 불안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결적 노사 관계, 실업난, 가계 부실과 카드 문제, 신용불량자 등이 우리 경제의 악재로 잠복해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으로 인한 혼란과 정부의 정책 혼선이 더해져서는 안될 일이다.

새해의 외교정책 최우선 과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 고수와 선 핵 개발 포기로 맞서고 있는 북.미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할 경우 실마리를 풀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최소단위 공동체인 가정마저 흔들리고 있는 점도 큰 걱정이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미혼모 문제, 이민 교육 열풍에 따른 '한 부모 가정'이 늘어나면서 가정이 제 기능을 잃어간다.

결혼과 출산 기피, 가정 폭력 만연에다 버림받고 학대받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가족 동반 자살이 잇따르기도 했다.

출세 지향적인 부모들의 성향과 입시 위주의 과열교육, 인성교육의 약화가 빚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가정은 한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므로 가정이 깨어지면 사회와 국가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학벌주의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는 가정 문제와 교육 개혁을 놓고 미봉책이나 졸속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가정 공동체의 확산과 교육의 정상화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사회와 국가로 가는 초석이 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4월에는 경부고속철도 개통된다.

우리의 꿈이 새해에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