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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고양시 화정동 집을 나서 저녁 11시 가량, 전세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강동구 길동 청산학원 앞에 도착했다. 저녁 11시 20분쯤, 다음 카페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사이트를 보고 꼭 한번 대간 산행에 참여해 보고 싶다며 따라 나선 '성도 몰라요, 이름도 모르는' 신참 3분을 포함, 총 일행 16명을 태운 채 목표지인 경북 상주시 소재 화령재로 향했다.
전세버스는 어둠을 뚫고 한밤중인 새벽 3시반쯤에 화령재에 도착했다. 지난 산행때 종료했던 팔각정 정자가 있는 화령재 고갯마루가 아니었다. 그 곳에서 서쪽 국도를 따라 300미터 가량 더 내려온 수청삼거리. 거창에서 바로 올라오신 백신종 선배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이래 대간코스 300미터 가량을 차로 이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변칙 산행', '무(無)다리 산행' 이구만.
오호 통재라. 백두대간길 300 미터는 내 발로 가지 못하다니. 나중 , 나중이라도 나 혼자 이 곳을 지나갈 기회가 있으면 내려서 걸어가면 되지. 미완의 숙제를 남기고. 이헌태, 뭐 그런 자자한 일을 가지고 찜찜하게 생각하냐. 대충 살아라. 그 정도의 길은 걷지 않아도 그만하면 백두대간 산행을 완벽하게 잘 하고 있는 거야.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저는 경청하는 편이라서 주위 분들의 옳은 얘기는 즉각 받아들입니다. 이헌태, 니가 경청하는 편이라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아는 사람 알고 모르는 사람 모른다.북치고 장구치고 잘 노네. 니가 나타나면 모두들 시끄럽다고 해.
대간 산행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일러 버스 안에서 소등한채 잠시 머문 뒤 오전 4시 14분에 일제히 헤드랜턴을 켜고 북서쪽 야산 능선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근래 며칠 동안 혹한이 기습, 속으로 벌벌 떨까봐 걱정하는 차였는데 산속 기온은 바람이 불지 않고 서늘한 한기만 가득 찼을 뿐이어서 그러 저럭 견딜만했다. 깜깜한 하늘에 하얀 안개가 허느적 허느적 끼여 있는 가운데 밤공기가 청명한 게 여느 겨울 날씨였다. 다만 희한하게도 광대한 하늘을 4조각 4등분했을 때 한 조각의 공간에서만 별들이 반짝 반짝 빛을 내뿜었다. 즉, 하늘의 4분의 1만이 '하늘 구실'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활동 정지' 였다. 예전에 축구시합이 있는 어느 경기장에서 스탠드의 반은 비가 오고 반은 비가 오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하든데, 꼭 그 꼴이었다.
겨울산행이라고 하면 으레, 백설이 쌓여 있고 빙판 길이어서 완전무장한 채 무척 조심스런 행군을 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번 산행 길은 겨울 산행 길보다는 늦가을 산행 길로 볼 수 있었다. 대지는 눈도 쌓이지 않았고 더구나 꽁꽁 얼어 있지도 않았다.
푸른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누런 나무들이 누런 잎들을 모두 떨군 채 '겨울 동안거'에 들어갈 준비를 한창 하고 있는 듯했다. 산은 온통 누런 낙엽들로 덮여있다. '누런 나무와 나뭇잎들의 겨울잔치'다.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들린다. '바스락 교향곡'이라고 들어나 보셨나 모르겠네. 바싹 마른 누런 낙엽들이 바싹 마른 대지와 함께 어우려져 펼치는 '누런 향기의 산속 교향곡'. 내 마음까지도 바싹 말라지는 듯하다. '바삭 브라더스'. 이헌태는 원래 마음에 윤기가 없으니 말이 되네. 오늘 따라 인간도, 땅도, 낙엽도, 다 바싹 말랐네. 왜 그러세요. 저도 알고 보면 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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