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5)-형제봉 (3)

3.

'뻥'쳤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그래도 이헌태죠. 이 작디 작은 낙엽 밟는 소리가 무한 적막의 우주를 뒤흔드는구나. 이 순간에 오로지 낙엽 밟히는 소리 밖에 없다는 강조의 뜻이죠. 극미와 극대의 대조법 아세요. 어떤 분이 "보잘 것 없는 자그마한 양보가 우주를 들어 올린다"고 했다고 하네요. 작은 양보가 그만큼 어려운 결단이고 또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큰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겠죠. 제가 누구입니까. 이빨꾼 아닙니까. 짱구를 또 돌렸죠. 이런 얘기 누군가 또 했겠지 뭐.

1) 하나의 작은 선행이 이 우주를 감동시키고 하나의 작은 악행이 이 우주를 슬프게 한다. 2) 나의 가치 크기는 우주의 가치 크기이다. 당연하죠. 내가 죽으면 이 우주도 필요 없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나의 존재가 우주만큼 중요하죠. 전에 그랬죠. 포수가 한 마리의 새를 총으로 쐈을 뿐이지만 그 새는 전 우주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고요. 3) 우주만한 지식과 철학과 깨달음이 목마른 나에게는 한방울의 물도 되지않는구나. 뭐야.

그럼 이헌태의 18번 노래, '꼬마인형'과 '시골구경' 은 우주를 울리는 노래이고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는 우주를 시끄럽게 하는 잡글이겠네요. 하모하모.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우주적 사고에서 나온 개념인 것 같네. 하모하모. 이헌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종'. 뭐야.

이제, 생물이든 미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우주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을 내립시다. 니 똑똑다. 이헌태의 논리로 따지만 우주를 들어올리고 우주를 감동시키는 일은 아주 아주 아주 쉬운 일이구만. 하모하모.

갑자기 '카오스이론' 이 생각나네요. "북경에서 나비가 펄럭이면 뉴욕에 폭풍이 칠 수 있다"는 나비효과는 카오스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하네요. 작은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미국 MIT'에드워드 로렌츠'가 날씨 예측을 위해 컴퓨터를 작동하면서 카오스의 특성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는데, 결국 장기 날씨예측이 불가능했다고 해요.

여기도 뻥치는 사람 있네. 북경에서 나비가 펄럭이면 뉴욕에 폭풍이 칠 수도 있다고. 둘이 무슨 관계가 있는데. 나, 원참. 뻥도 이제 학자들의 이론이 되는 거창하고 황당한 세상이네.

솔직히 그 같은 논리를 발견한 분들이 그전에도 수두룩해요. 한 분만 소개하면. 기미년 독립선언문 불교계 33인 가운데 한 분이셨던 용성 진종스님은 "합죽선 큰 부채를 한 번 흔드니 / 동정호 맑은 바람이 예까지 불어온다". 선승들은 그 같은 표현을 한 번씩은 다 사용했죠. 그럼 나도. '이헌태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나라 사랑을 다짐하니 온 나라가 그 향기로 가득하더라'. 뭐야.

스케일을 줄여서. 달려오는 지하철에서 생명을 구하고 죽거나 다친 '살신성인' 분들의 모습이 언론보도를 통해 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죠.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행동이 5천만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저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스케일이 작지만 이헌태, 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뭐가 맞아. 반성할 줄 알아야지. 네.

생명사랑, 생명사랑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죠. 중국 성리학자인 정명도. 서재 마당에 우거진 풀을 뽑으려 했을 때 정선생 왈, "풀은 천하의 큰 기운을 받고 생겨난 것이므로 인간과 같이 살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생각에서 정원의 풀을 베어 버리지 않는다". 야, 죽인다. 그렇게 까지. 정명도 사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인자는 천지만물을 자신과 일체로 여긴다". 맞습니다, 맞고요. 또 현대 우리나라에도 땅 위에 기어가는 벌레가 죽을 까봐 발 뒷굼치를 들고 다니시는 스님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성서에 따르면 이 세계는 하루 이틀 사흘 차례차례 만들어져 엿새째 되는 날에 완성되었는데 그 마지막 날 엿새째에 만들어 진 것이 인간이죠.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하면, 벌레도 인간 먼저 만들어졌네. 그럼 인간이 벌레에게 대해야 하는 자세가 뻔한 것 아니에요. 먼저 태어나신 분들에 대해서 충성. 인간이 뭐 '나훈아'인가. 노래방에서 대미를 장식하기위해 제일 마지막에 노래하게. 인간도 이제 벌레 하나라도 특히 거대한 자연에 대해서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하죠.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란 책에서 "인간 금수 초목등 세가지 새명체는 지, 각, 혜가 있고 없음이 서로 달라서일 뿐이지 어느 것이 더 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하였네요. '자연사랑'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올바른 지식인들의 마음속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었구만.

용성 진종스님이 나왔으니 하나 더. 그 스님이 어릴 때 고기를 잡으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서 놓아 주었고 고사리를 꺽자 '아이고 아파라'라고 하는 것 같아 울었다고 하네요. 개그콘스트에 자주 나오는 말 "대단해요". 고기 수십만마리 마구 낚는 원양어선 어부들도 그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던데.

하나 더. 진종 스님의 임종게가 제가 준비한 임종게, 이헌태 니가 무슨 임종게. 니는 영덕대게 좋아하더니 니도 게냐. 웃긴다, 웃겨. 니 같은 사람은 '숨 끊어지기 직전에 한마디' 라고 해. 하여튼 비슷해요.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라" 라고 하면서 침묵이 흐르자 이내 곧 "그동안 수고했다. 더욱 정진하거라. 나는 간다". 그리고 좌탈입망했다고 하네요. 나는 "그동안 고마웠다. 잘 있거라. 나도 잘 지냈다.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자"인데.

이 스님은 법문을 대할 때는 사자와 같고, 제자를 대할 때는 염라대왕과 같고, 참선을 할 때는 돌부처와 같고, 사람을 대할 때는 관음보살과 같고, 선방수좌를 접할 때는 날카로운 칼날같이 했다고 하네요. 와, 변화무쌍하구만. 손오공이가.

이헌태는 머리가 나빠서 다양한 곳에 다양한 잣대가 아니고 다양한 곳에서도 오로지 하나만 할래요. '허벌래 허벌래', '대충 대충'. 자식에게나 마누라에게나 회사직원에게나 친구들에게나 모든 이들에게. 일관성은 좋은데 그게 말이 되냐. 이헌태. 죄송합니다. 이헌태의 결론, 생명존중사상이 바로 환경운동이고 이것이 곧 나의 생명보존법이다. 결국 오래 살겠다는 것이구만. 꼭 그렇게 삐딱하게.

이처럼 하나 하나의 생물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극 존중의 사고'도 있지만 반대로, 우주에 인간 하나쯤이야 하는 '극 무시, 극 허무의 사고'도 있을 수 있죠. 이런 생각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우주도 술이냐. 주만 보이면 다 술로 보이냐. 술은 다 좋죠. 입술도 좋고, 윤동주도 좋고 우주도 좋고. 술이라 카면 환장을 하는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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