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울타리 위를 걷는 소년

때로 어떤 그림이나 사진에서 소설이나 영화 못지 않게 많은 얘기를 읽게 되는 때가 있다.

내 방에는 조지 타이스의 작품 '울타리 위를 걷는 소년'이라는 사진이 걸려 있다.

미국 아미슈 신앙촌의 한 소년이 나무 울타리 위를 걷고 있는 흑백사진인데, 소년은 아마도 열 댓 살쯤? 발목이 드러나는 깡총한 멜빵바지를 입고 마을길을 따라 놓인 울타리 위를 조심스레 걷고 있다.

외줄 타기 곡예사를 흉내내고 싶었을까?

한낮의 시골마을은 조용하고 어쩌면 약간은 말썽꾸러기 기질이 있을지도 모를 소년은 거짓말로 학교를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의 계율은 너무도 많은 것을 금지하고 있기에, 고작 건초창고를 새로 짓거나 뉘 집에 아기가 태어나는 일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마을이 소년에겐 너무도 심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지루한 일상이 소년으로 하여금 울타리 위로 올라가게 만든 것일까?

울타리 위를 걷는 놀이는 위험하다.

어쩌면 엄격한 아미슈 마을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놀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년들은 어디서나 울타리 위나 좁은 난간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인도의 카슈미르든 미국의 아미슈든, 그 소년이 자라서 성자가 되든 건달이 되든.

때로 어떤 그림이나 사진에서는 소설이나 영화 못지 않게 많은 얘기를 읽게 되는 때가 있다.

거기 울타리 위를 걷기를 좋아하는 한 소년이 있고, 그는 길을 걸을 때에도 비틀거리며 걷고 돌멩이를 걷어차며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일부러 낯설고 먼길을 돌아오기를 좋아한다.

또한 소년은 침을 퉤퉤 뱉기도 하고 동네 사람을 만나도 못 본 척 외면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만일 어떤 그림이나 사진이 유난히 마음에 닿는다면 그건 그 속에 낡은 사진 같은 자기 모습이 숨어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서정오(베이프로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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