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을 넘자(2)-대구.경북 섬유-(상)쓰라린 경험 10년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1992년 한중수교이후 지난 10년간 중국으로 앞다퉈 진출한 대구.경북 섬유업체들은 이같은 평범한 진리를 간과했다.

섣부른 자신감으로,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려는 안일한 발상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섬유산업과 현지 내수 시장 분석에 소홀했다.

중국에 진출한 지역 섬유업체들의 현주소와 중국 섬유산업 및 내수 중심지를 직접 들여다봄으로써 '중국 내수 시장 개척'의 필요성과 풀어야 할 과제들을 3회로 나눠 분석한다.

#1. 인천시 칭다오구

'인천시 칭다오구'로 불리는 칭다오시. 인천~칭다오는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불과해 지리적 이점을 노린 4천여개 한국 기업이 너도 나도 이곳에 진출했다.

대구.경북 또한 예외는 아니여서 중국에 진출한 전체 676개 기업중 209개가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둥성 일대에 포진하고 있다.

칭다오공항에 도착하면 왜 이곳이 '인천시 칭다오구'로 일컬어지는지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공항 주변엔 한국인 골프 관광객들을 찾는 한글 피켓이 가득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곳곳엔 우리 기업들의 한글간판이 진을 치고 있다.

관광 명소인 남부 둥하이루(東海路) 해수욕장 일대는 한국 음식점들이 넘쳐나고 웬만한 규모의 호텔이라면 태극기가 펄럭인다.

산, 강, 바다 등 천혜의 자연 조건 또한 우리와 흡사하고 한국 방송마저 실시간 중계돼 이곳이 낯선 외국 땅이라는 사실은 좀체 느낄 수 없다.

#2. 칭다오는 한국기업들의 천국(?)

KOTRA 장행복 칭다오 무역관장의 표현대로 '한국기업의, 한국기업에 의한, 한국기업을을 위한' 도시가 바로 '칭다오'다.

이곳의 인건비는 1인당 월평균 650~700위안(10만5천원) 수준으로 한국의 10분의 1~20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 최대 항구로 확장 공사중인 첸완(前灣)부두를 끼고 있어 수출입에도 그만이다.

이 때문에 섬유, 신발, 귀금속, 가발 등 국내 노동집약적 산업이 칭다오에 앞다퉈 집중 진출했다.

이들 기업들은 인건비를 최대 무기로 99% 이상이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한국으로 100% 역수출하는 '임가공'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2002년 현재 칭다오시에 진출한 한국기업 소득세는 8억2천만위안, 종업원 숫자는 30만9천명으로 각각 전체 외자기업의 24.6%와 56.8%를 차지해 최근 3년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수출실적 또한 40억달러를 돌파해 칭다오 전체의 45%에 이르고 있다.

#2. 칭다오는 없다(?)

가장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 칭다오는 누가 뭐래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임에 분명하다.

93년 대구-칭다오 자매 결연이후 지역 중소기업들의 칭다오 진출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졌고, 이 과정에서 1세대 태왕, 2세대 삼아 등 굵직굵직한 섬유기업이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칭다오에서 만난 지역 섬유기업들은 하나같이 동종 업계의 칭다오 및 산둥성 일대 진출에 대해 재고, 삼고를 신신 당부했다.

지리적, 정서적 장점 이전에 철저한 시장분석부터 먼저 하라는 것이다.

섬유의 경우 중국 섬유업체들의 살인적 저가 공세는 한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인건비 경쟁력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 또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나머지 노동집약적 산업도 조만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칭다오 시내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차로 1시간 30분 달려간 교남기술개발구. 세계의 공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주변 어디에서나 대형 화물차량의 행렬이 눈길을 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단 사이사이엔 바로 지금도 크고 작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교남기술개발구 국도로 들어서자 공장 지대 곳곳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간 한국 기업들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취재팀이 찾아간 곳은 최근 폐업한 지역 ㄷ섬유 공장. 1만평에 이르는 큰 공장은 인부 하나없이 기계 작동을 완전히 멈췄고, 주변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사진〉. 인근 ㅇ섬유 경우 수백대의 고철 섬유기계들이 공장 담벼락 주위에 가득 쌓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취재팀을 안내한 현지 기업인들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같은 풍경은 칭다오 공단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며 이 중엔 지역 섬유업체들도 적잖다고 전했다

#4. 칭다오의 주술에서 벗어나라

임가공 방식으로도 중국 섬유 제품을 당해낼 수 없자 대부분의 대구.경북 섬유업체들은 3년전부터 중국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생존을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현지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수로 눈을 돌리자 칭다오엔 시장이 없었다.

칭다오는 기본적으로 섬유 소비도시가 아닌데다 그나마 면시장 및 니트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폴리에스테르 박지를 생산하는 대구.경북 섬유업체들은 날씨가 따뜻한 장쑤성, 저쟝성, 광둥성 등 남쪽 바이어들을 찾아 시장을 옮겨야 했고 이는 마케팅 능력 부재와 물류비 부담 증가로 이어져 내수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원사 생산 업체로 칭다오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기업으로 일컬어지는 칭다오고합만 해도 t당 물류비가 300~400위안 수준으로 단 1원이라도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중국 섬유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으론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주)삼아 또한 주 시장이 남부 홍콩, 광저우 일대여서 운송비 및 시장 분석에 애로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김형진 삼아 부총경리는 "이 때문에 앞으로1, 2년 안에 광저우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라며 "중국에 진출하려는 섬유기업들은 처음부터 중국 내수를 목표로 최대한 시장과 근접한 곳에 입지를 닦아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칭다오.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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