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운동이 대구에서 갓 시작된 2001년 초 일각에서 운동에 우려를 제기했다.
지방분권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면 지역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토호세력이 타락하는 터전만 넓혀주므로 시기상조란 우려였다.
대구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이런 입장에서 운동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역민의 큰 기대감을 안고 출발했으나 부작용 또한 엄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 이러한 비판이 전혀 터무니 없지 않았다.
'지방분권국민운동'은 이에 대해 지방분권과 병행해 지역혁신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먼저 지역혁신을 이루고 지방분권을 하는 게 순서이나 그러자면 지방분권은 요원하므로 일단 분권과 분산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혁신을 이룩하자고 제안했다.
지방분권으로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의 권한이 커지면 지방의회 등 이를 견제하는 세력의 권한도 덩달아 커지게 마련이다.
주민소환제, 주민소송제, 주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될 예정이라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역할도 그만큼 커진다.
정치, 경제, 문화, 의료, 법조 할 것 없이 사회 곳곳에 건강한 이노베이터(혁신가)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정희석(鄭熙錫) 경북대 교수는 "혁신 주체 곧 창조적 파괴를 하는 이노베이터가 많아지고 이들이 함께 지역혁신에 나설 때 지역에 비전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노베이터들이 참여하는 지역혁신협의회를 꾸리도록 했다.
이 협의회의 역할은 막중하다.
정부는 향후 지역혁신과 지역발전 계획을 종전처럼 지자체가 짜는 것이 아니라 이 협의회가 짜도록 권하고 있다.
협의회가 내놓은 계획에 따라 공공기관의 이전과 국가 예산의 투입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김형기(金炯基) 지방분권국민운동 의장은 "지역혁신협의회를 제대로 만드느냐에 지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잘라 말한다.
협의회 참여 인사를 기업, 관계, 대학, 언론, 교육, 시민단체 등 각계의 이노베이터로 채우지 않고 관이 주도하려거나 원로 중심, 기득권자 중심으로 꾸리면 정부의 인정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DJ정부의 제2건국위원회 아류가 되고 말 것이란 얘기다.
정부가 가닥을 잘못 잡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혁신협의회 구축 단위를 생활권이나 경제권이 아니라 광역 지자체 단위로 하고 있어 행정편의적 발상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대구.경북의 경우 하나하나 따져보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대구.경북통합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구는 연구개발(R&D) 기능, 경북은 생산기능을 맡아 공동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방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경북이 대구를 믿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난 20여년간 대구는 경북 몫을 뺏어만 갔지 챙겨주지 않았다는 피해의식도 강하다.
이같은 불신과 피해의식에 따라 경북 따로 대구 따로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각각 공공기관 유치 계획을 짜 독자 행보를 하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 6월 구성된 대구.경북분권혁신협의회에서도 빠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회는 시.도와 시.도의회, 대학총장협의회가 참여해 6자 공동의장제로 운영되고 있으나 대구와 함께 해서는 경북은 들러리로 전락할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정부의 요청과는 달리 공공기관이전 등 지방화를 관 주도로 추진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지역의 오피니언리더(여론주도층)들이 지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발전 계획을 짜고 이에 합당한 공공기관의 유치와 지역 개발 사업을 제시하지 않고 공공기관의 규모와 수익성 등만 따져 그냥 달라고 떼쓰는 꼴이다.
김태일(金台鎰) 영남대 교수는 이와 관련, "대구.경북의 이노베이터들이 머리를 맞대 지역혁신 계획을 짜고 여기에 적합한 공공기관의 이전을 요구하고 지역발전 사업을 추진해야 설득력이 있다"며 "지역이 체계적, 전략적 접근을 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지방분권 시대가 개막됐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지역에 삶의 터전을 둔 이노베이터들이 지역 혁신에 서둘러 동참해 건강한 지방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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