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충남 태안 안면도

새해 새로운 계획을 세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신년의 들뜬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지만 약해지는 맘을 추스르는데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남 태안 안면도를 간다.

긴 여정이지만 울울창창한 안면소나무와 이름도 예쁜 꽃지 해수욕장의 낙조를 보고 온다면 작심삼일이 될 뻔한 작정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면도는 '해수욕장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기자기한 해변을 많이 끼고 있다. 백사장, 삼봉, 두여, 밧개, 방포, 꽃지, 샛별, 장삼, 바람아래…. 이름만큼이나 정겨운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10km도 안되는 해안도로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바로 옆에 있는 해수욕장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하얀 모래밭이 있는가 하면 검은 몽돌밭도 있다. 안면교와 붙어 있는 서산 천수만 가는 길에서는 이제 막 날아온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군무를 펼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안면도로 가는 길에 안면암을 먼저 들른다. 지난 98년 조계종에서 낙도에 불교전파를 위해 세운 곳이 안면도의 숨은 비경으로 알려졌다. 언덕위에 3층짜리 법당이 있다. 한 건물에 무량수전, 용왕각, 삼성각이 함께 있는데 들어서는 입구에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없고 천왕사자를 새긴 돌조각들을 세워놨다. 그냥 그런 절인가 싶었는데 웬걸 앞으로 돌아서 보니 앞바다에 수많은 작은 무인도들이 펼쳐져 있고 절은 바다를 향해 있다. 안면암 앞에는 부교를 놓아 바다위를 걸어서 섬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기막힌 낭만을 만들어 놓았다. 썰물때는 부교도 바닥에 놓여 그저 징검다리가 된다. 바다에서 보니 작은 요사채 같던 안면암이 큰 덩치로 다가오고 바닷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편히(安) 잠드는(眠) 섬(島)이라는 이름답게 안면도는 고즈녁하다. 그 평안함은 아마 명물 소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방도를 따라 달리는 내내 만나는 것은 솔숲이다. 솔향은 안면도 자연휴양림이 가까워질수록 더 향기롭다. 안면송이라 불리는 적송은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을 만들 때 사용되던 목재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라있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해가 많이 기울었다. 꽃지해변에서 낙조를 봐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자연휴양림과 지하도로 연결된 조개산자락의 수목원을 서둘러 오른다. 안개낀 안면송이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해질녘 순광을 받은 울창한 소나무들이란.... 줄기마다 지는 해의 햇살을 담아 홍조띈 새색시볼 마냥 붉은 색이다. 세월의 무게를 안은 굴피마다 붉은 햇살이 비쳐 반짝이고 울창한 송림사이로 뿌려지는 빛의 향연이 벌어진다.

수목원 언덕을 넘어 아산원을 둘러본다. 고 정주영 회장의 기부금으로 만든 한국의 전통정원, 키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정원엔 아담한 연못과 정자가 소박한 멋을 풍긴다. 오솔길을 따라 방향수원, 초화원, 약용수원, 자생화원 등을 걷다보면 어느새 전망대다. 드넓은 솔밭이 동쪽으로 펼쳐져 있고 외도와 내파수도가 오롯하게 서해바다에 떠 있다.

일몰을 앞두고 이름도 예쁜 꽃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휴양림에서 차로 5분거리. 백사장이 3.2km에 달한다. 걸어서 왕복 2시간이 걸릴 정도로 긴 해변이다. 봄이면 매화가, 여름이면 모래언덕에 뿌리를 내리는 해당화가 줄지어 피는 꽃해변이다. 겨울이라 꽃지해변에 꽃이 없어 아쉽지만 꽃지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썰물 때 물길이 열리는 할미.할아

비바위부터 멀리는 외파수도와 내파수도, 외도, 치도 등의 섬들이 해무속에서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안면도를 지키던 장수 승언이 북방으로 떠나고 부인 미도가 남편을 기다리다 할미바위로 방부석이 됐다는 전설을 지닌 바위 뒤로 노을이 진다.

구름에 가리던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일출처럼 이글거리지는 않지만 한껏 기울어진 햇살이 미련없이 바다로 스며든다.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게 물드는 겨울저녁의 색채가 황홀하다.

사진찍기에 여념없던 연인들이 카메라를 놓은 채 바다만 바라본다. 그 바다 앞에서는 잠시 정신을 잃어도 좋을 듯 하다.

◇가는 길 : 경부선 유성IC → 공주 → 홍성 → 서천 → 안면대교( 3시간 반정도 소요)

◇요즘 오전에 가면 썰물 때 꽃지 해수욕장에서 할미.할아비 바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오후 1시 만조)

◇시간이 나면 안면도 끝자락 종점 영목 가기전 바람아래해수욕장을 들러보자. 영화"마리아와 여인숙" 촬영장소인 '바람아래 해수욕장'은 아직도 한적한 어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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