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희대기자의 연탄공장 체험

남녀를 불문하고 40, 50대 이상은 누구나 연탄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기자 역시 연탄과 관련된 적잖은 추억을 갖고 있다.

대구에서 고교를 다닐 무렵 겨울방학을 맞아 시골에 있는 집에 와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병원신세를 진 기억도 있다.

또 학창시절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새벽녘 연탄을 갈기 위해 일어나다가 잠결에 마당에 넘어지던 일, 연탄불이 꺼져 냉방에서 잠을 자던 일, 군대 졸병시절 페치카(난로) 당번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 등 무수한 추억들을 갖고 있다.

기자는 지난 20여년간 연탄과 떨어져 살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연탄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수십년간 서민들의 따뜻한 겨울을 책임지던 연탄. 누가 어느 곳에서 연탄을 사용하는지 알아보고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도 하기 위해 의성읍내에 있는 의성 태원연탄공장을 찾았다.

기자가 연탄공장을 찾은 것은 이른 아침인 오전 7시쯤. 공장 한 쪽에 가득 쌓여 있어야 할 무연탄(공장에서는 분탄이라고 부름)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연탄을 싣고갈 화물차들만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는 10여명이 불을 피운 난로를 에워싸며 부산하게 떠들어댔다.

공장을 한바퀴 돈 뒤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전화는 연신 울려대는데 박봉출(72) 사장은 "큰일났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늘은 배달이 불가능하다며 전화로 사정하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어떻게 된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 사장은 "분탄이 없어 연탄을 찍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 설을 앞두고 각 가정과 버섯재배사, 양계장, 화훼단지 등지에서는 연탄을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무실 문도 몇분마다 한번씩 열렸다.

연탄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직매점 주인과 주민들. 박 사장은 "올들어 주문이 폭주해 하루 100t 정도의 분탄이 공급돼야 하지만 50t도 공급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박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또 한 사람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군위군 소보면 복성리에서 양계단지를 한다는 아주머니는 내일까지 연탄 1천장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박 사장은 대답은 하면서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오후가 되면 그나마 남아있는 분탄도 고갈된다는 걸 훤히 알기 때문.

사무실을 나와 공장 앞 난로 옆으로 다가갔다.

난롯가에는 10여명이 둘러서 서로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분탄이 얼마 남지않은 시점에서 연탄을 서로 먼저 가져가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왔다는 이덕구(50)씨는 "오늘 연탄을 싣고 가지 않으면 도산면에 있는 대부분 연탄사용 가정들이 설은 고사하고 냉방에서 잠을 자야 할 판"이라며 "연탄장사 15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기가 막히다는 반응이었다.

연탄직매점들이 서로 연탄을 가져가야 한다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집에 연탄이 떨어져 공장까지 찾아나선 주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할말을 잃은 듯 하늘만 보고 있다.

난방용 연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5년 전 연탄보일러로 바꿨다는 이호생(62.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씨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탄을 갖고 가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연탄이 모자라 사흘째 계속 공장을 찾았다는 이씨는 "서민 연료인 연탄을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

새벽부터 나와 순번을 기다리는 구명진(50.의성군 가음면 순호리)씨도 "연탄 500장이 필요하지만 우선 200장이라도 갖고 갔으면 좋겠다"며 "오늘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틀린 것 같지만 일단 분탄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라고 했다.

연탄직매점 주인들과 함께 연탄싣기 체험을 하는 사이 시간은 벌써 낮 12시를 가리키며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박 사장의 아들인 사실상 연탄공장 운영자인 박영수(43)씨가 나와 있었다.

어젯밤 밤샘작업으로 연탄 4만장을 찍어 기록을 세웠다는 박씨는 연일 강행군 탓인지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였다. 그는 연탄공장이 10여년째 내리막길을 걷자 종업원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연탄공장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했다.

"10년 동안 고생하며 지켜온 공장이 이제 좀 숨을 쉬려고 하니 분탄이 없어 가동을 못할 지경입니다.

분탄이 남아돌 때는 안 팔리고, 잘 팔릴 때는 분탄이 모자라고".

연탄 생산량이 언제부터 늘어났느냐는 물음에 박씨는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부터 연탄소비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2002년에는 180만장, 2003년 260만장으로 크게 늘었다"며 "올해는 생산량이 400만~500만장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1992년에는 생산량이 무려 1천만장에 달하는 등 호황기를 누렸으나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연탄 한 장 값이 얼마냐고 묻자 "공장도 가격은 180원, 소비자 가격은 250원"이라며 "커피 한 잔 값에 비하면 6분의 1, 자장면 한 그릇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된다"고 했다.

박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연탄공장이 갑자기 가동을 멈췄다.

벌써 분탄이 떨어졌나 싶어 공장 쪽으로 가보니 '워낙 강행군을 한 탓에 모터가 타버렸다'는 푸념이 들려왔다.

분탄이 일부(2시간 분) 남았지만 오늘 더 이상 공장가동이 틀렸다는 말에 따라 아쉬우나마 체험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공장을 나와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설을 쇠기 위해 새벽부터 연탄을 기다리는 서민들의 얼굴은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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