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비 234명의 일화 '인생의 참스승 선비'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의 용장 한니발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로마.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로마의 최고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 건국 이후 500년 동안 로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이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바로 로마에서 비롯됐다. 로마가 세계의 맹주로 올라선 원동력 중의 하나가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이었다.

온갖 비리로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왜 이다지도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을까"라며 개탄하고 있다. 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높다.

삼국시대부터 항일기까지 빼어난 학덕과 절개를 보인 선비 234명의 일화를 담은 '인생의 참스승 선비'(전2권.이용범 지음.바움 펴냄).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 시대의 지도층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권력과 부에 연연치 않고 자기 소신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여유 있는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남을 폄하하거나 비판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이 책에는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선비들의 향기나는 삶이 담겨 있다.

5년에 걸쳐 역사서와 개인문집, 문헌설화를 꼼꼼히 살펴 본받을 만한 선비들의 일화를 가려 뽑은 저자는 "우리 시대의 '된 사람' '채워진 사람'을 기다리며 이 책을 내놓는다"고 밝혔다.

소신과 의리, 지조를 삶 속에서 실천한 선비들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신라 진평왕 때 병부령을 지낸 김후직은 왕이 지나치게 사냥을 즐기고 정사에 소홀한 것을 우려해 간언을 계속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늙어 병석에 누웠을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 임금이 사냥하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게 될까 두렵다.... 내가 죽거든 아무쪼록 임금이 사냥나가는 길에 내 뼈를 묻어다오". 김후직의 세 아들은 어버지의 유언을 따랐고 이 소식을 접한 왕은 죽을 때까지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조선 초 재상 정갑손이 함길도 감사로 있을 때였다. 마침 조정에 일이 있어 도성으로 가던 중, 과거 합격자 명단에 아들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게됐다. 그는 서둘러 말을 몰아 도성에 도착한 후 곧바로 시관(試官)을 찾아가 꾸짖었다. "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여우처럼 아양을 떠는구나. 내 아들놈은 아직 공부가 되어 있지 않거늘 어찌 임금을 속이고 과거에 합격시켰느냐". 정갑손은 그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삼국시대 박제상부터 시작한 이 책은 관창, 최영, 정몽주, 길재, 황희, 사육신, 이황, 이이, 이순신, 최익현 등을 거쳐 독립운동가 조만식의 말로 끝을 맺는다. "내가 죽은 뒤 비석을 세우려거든 거기에 비문을 쓰지 말고 큰 눈을 두 개 새겨다오. 저승에 가서라도 한 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지켜볼 것이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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