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도 경쟁력이다-(6)단순노무도 "경쟁력 없다"밀려나

지난 2001년 은행에서 퇴직한 박모(59)씨는 횟집에 주차요원으로 취직했다가 주차요원 수를 줄이는 바람에 퇴출당했다.

명예퇴직 후 세번째 퇴출. 박씨는 명퇴 후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라도 꼭 취업해야 한다'며 구직 전선에 나섰지만 번번이 '퇴출'이란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박씨가 퇴직 후 처음 도전한 일은 주유원. 그러나 방학시즌 대학생 아르바이트들이 너도나도 몰리면서 자리를 내놔야 했다.

이후 2002년 닭발 뼈 바르는 일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손에 물집이 생기는 등 몸이 따라주질 못해 스스로 포기했다.

박씨는 "할 만하다 싶은 일은 아예 자리가 없고, 몸으로 때우는 일은 젊은층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다보니 거듭 쫓겨나게 된 것 같다"며 "딸아이 학비에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되는데 반복되는 퇴출에 이제 의욕까지 상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한국의 중장년 노후와 노인들의 현실은 암담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다.

55세 정년 채우기도 힘들고 재취업에 나서 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 맞기 일쑤다.

이에 국민연금에 기대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노후대책으로 기대하기 힘든 실정.

그간 번 돈도 자식 뒷바라지에 다 써 버렸다.

퇴직금 등 최소한의 자금마저도 자녀 결혼비용 등에 쓰고 나면 빈털터리다.

그나마 재취업 가능한 직종은 경비나 청소요원 등 단순노무직뿐. 그러나 상당수 퇴직자들이 이들 단순노무직에 선뜻 나서기를 꺼리는 데다 이마저도 자리가 한정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퇴직자들의 자활을 위해 지난 2001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20곳에 '시니어클럽'을 만들었지만 일자리 공급이 구직자 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니어클럽 류우하 관장은 "50대 퇴직자를 원하는 업체가 적어 지난해 50대 취업희망자 500명 중 150명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며 "주유원.경비.청소요원.간병인 등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이 아주 한정돼 있어 정부, 지자체의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고 했다.

지난 98년 은행에서 퇴직한 권모(54.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씨는 "노후생활자금 마련은 환상에 불과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퇴출 후 가장 먼저 창업자금을 위한 '목돈 만들기'에 매달렸다고 했다.

개인연금을 중도해약해 800만원을 찾고 당시엔 국민연금 일시불 반환이 가능해 11년 동안 회사와 반반씩 부담했던 2천만원도 찾았다.

소득이 없다보니 매월 10여만원의 국민연금 불입조차 힘들었기 때문.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사업도 결국 실패. 설비비만 날리고 문을 닫아야 했다.

권씨는 "젊을 때 다른 일을 겸하지 않고 한곳에만 매여서는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기 힘들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며 하소연했다

황모(53.대구시 서구 내당동)씨도 지난해 대구 성서공단 섬유공장에서 7년동안 해온 기계관리 및 정비 업무를 그만두고 나왔다.

일거리가 급격히 줄자 기계 가동을 줄였기 때문. 이제 황씨에게 남은 유일한 노후자금은 퇴직금뿐이다.

그러나 퇴직금도 2년전 대학생 딸의 등록금으로 1천만원을 융자받아 2천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 두 달에 한번씩 200만원을 받다 보니 생활비로 대부분 빠져나갔다.

아파트 관리비, 교통비, 식비 등 네 식구 생활비로만 최소 100만원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 황씨는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아직 6, 7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하고 목돈도 없어 뭔가를 해 볼래야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고용불안 등으로 갈수록 노후생활자금 부담은 늘고 있지만 국민연금, 퇴직금, 개인연금, 실업급여 등 어느 하나도 뾰족한 노후 대책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지난해 5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노후생활자금을 추산한 결과 만 60세인 부부가 평균기대수명(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준의 기초생활비(월 58만9천219원)와 월 50만원 정도의 여유비용만 써도 모두 2억6천여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55세 퇴직시 평균소비지출액(96만여원.2인가구기준)과 월 200만원을 사용할 경우 5억9천만원, 50세 퇴직시엔 7억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부부가 모두 건강하고 자녀 교육비, 결혼 자금 등을 제외한 비용.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경우 표준소득월액이 219만원(35등급)인 경우 20년 납부시 54만1천320원, 30년 80만4천580원, 40년 106만7천840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수급액이 많지 않은 데다 상당수 근로자가 표준소득월액이 219만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30, 40년 동안 국민연금을 불입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2013년부터 국민연금수급연령이 5년 단위로 1세씩 증가해 2033년엔 65세가 돼야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 대구지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본인 사망 및 질병시 생활을 책임져주는 최소한의 생활보장이지 최근의 50세 조기퇴직자까지 책임져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퇴직금의 경우에도 현행 근로기준법상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돼 2002년 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종사자수 1천433만6천604명의 32.4%인 465만176명은 퇴직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퇴직금 대부분이 노후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주택구입시 융자받은 돈의 상환이나 자녀 결혼자금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개인연금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3년말 현재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에 개인연금을 불입하고 있는 가입자는 259만7천명 정도뿐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원은 "고령화의 급진전에도 불구하고 정년 이전에 퇴직한 50대가 기대수명까지 생활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계명대 경제학과 김영철 교수는 "조기 퇴직자들이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계약 위반"이라며 "현재 40, 50대 퇴직자들은 정년보장의 기대하에 근로조건을 형성했지만 기업들은 시장환경이 변했다는 이유로 근로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또 "정부가 나서 중.고령자 일자리 제공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협찬:사회복지법인 어르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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