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차고 딱딱한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간다.
꽝꽝 얼어붙은 저수지처럼 차가운 겨울 하늘로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는 가슴 속의 팽팽한 현 하나를 툭 끊어 놓고 만다.
아마도 시인들 중에서 새와 날개의 이미지를 시에 가장 많이 담아낸 이는 김승희 시인이 아닐까? 김승희 시인은 '인형의 시대. 2'에서 새를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저렇게까지 체형을 가하는 것이었다니!/ 그토록 체벌을 가해서 날아가고 싶은/곳,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새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제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 몸에 스스로 체형을 가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를 읽은 이후부터 날고 있는 새의 자유로운 이미지보다 새의 작은 몸을 내리누르는 외부의 무서운 힘과 새의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다.
얼음처럼 차고 딱딱한 하늘
최근 독일의 주요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리베라투르상 16회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오정희의 '새'를 처음 읽었을 때, 날다가 지쳐 눈 위에 떨어져 꽁꽁 얼어붙은 채로 죽어있는 어린 새 한 마리를 떠올렸다.
창공 위로 비상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새, 어미새가 떠나 버린 둥지 위에서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날개로 둥지 위로 기어오르기 위해 파닥거리는 어린 새, 끝내 둥지 아래로 추락해 차가운 눈 위에서 얼어죽고 마는 날개가 찢겨진 어린 새 한 마리. 오정희의 '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 우미와 우일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리자 어린 남매는 친척들 집을 전전한다
'새'는 작가 오정희가 초등학교에서 상담 교사로 자원 봉사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가정과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의 알몸으로 세상에 맞서야 하는 어린 아이의 영혼이 어떻게 훼손되어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리고 작고 무력할수록 세상은 폭력적이고 가혹하고 차갑고 불친절하며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아이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받게 되는 상처와 상실감, 불안, 절망이 내면화되는 과정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정희의 '새'에서 그려지는 겨울은 일체의 감상이나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목에 겨누어지는 칼날처럼 섬뜩하고 날카로운 겨울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겨울풍경에는 차갑고 딱딱한 얼음이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줄에 매달려 벌벌 떠는 빨래
겨울은 길고 추웠다.
눈도 내리지 않는 맵고 바람 센 날들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졸졸 가냘프게 흘러내리는 물로 수돗가에는 날마다 조금씩 높아지는 얼음동산이 생겼다.
물은, 네모나게 턱을 높여 시멘트 바른 수돗간을 넘어 마당으로 번져 얼음판을 만들었다.
더운 김을 피워 올리던 빨래들은 이내 고드름을 매달고 빳빳이 얼어들었다.
큰어머니는 해가 진 뒤에도 자주 빨래 걷는 것을 잊어 우리들의 옷가지들은 팔 벌리고 다리를 꺾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밤새 빨랫줄에 매달려 우쭐우쭐 춤을 추거나 덜그럭덜그럭 뼈 부딪는 무서운 소리로 아, 춥다춥다 떠들어대었다.
땅에 떨어져 있을 때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이 작품의 전체를 통틀어 겨울풍경 묘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나의 뇌리 속에 강렬한 겨울 풍경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감상을 배제한, 극도의 절제된 문체 때문이다.
버림받은 아이들의 생에 혹독하고 무서운 겨울이 숙명처럼 펼쳐질 것이라고 작가는 얼음의 반복적인 묘사를 통해 예리하게 암시한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시린 발을 담그고 있는 앙상한 겨울 나무의 가지 위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세상 밖으로 너무 일찍 날아가 버린, 우주소년 토토를 좋아하던 어린 우일이의 영혼 같은 새 한 마리가. 김옥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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