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말죽거리 잔혹사

말죽거리 잔혹사(殘酷史)-시험당하는 청소년기

제목이 흥미롭다.

말죽거리는 서울 강남의 거리 이름이다.

요즘은 강남 8학군과 최고급 아파트가 줄지은 꿈의 거리이다.

지금부터 26년 전인 1978년의 말죽거리는 어떠했을까. 이 영화는 그 당시 말죽거리의 잔혹했던(?)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현수. 강남 개발붐이 일 때 그의 부모는 말죽거리로 이사온다.

현수가 고2 때다.

전학은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부모는 아들의 교육보다는 경제 논리로 이사를 했고, 감성적이고 모범생인 현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들에게 공부와 절제된 생활을 강요할 뿐, 따뜻한 격려나 이해는 보여주지 않는다.

현수는 견고한 자아감을 갖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소룡과의 동일시만이 소외된 현실을 견디는 유일한 정신적 탈출구였다.

학교는 성적순으로 인격 매김을 하고, 부모의 배경에 따라 학생을 대접하는 부조리한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교사들의 잔혹한 체벌과 학생들간의 세력 다툼에서 힘의 논리에 의한 생존경쟁이 있을 뿐이다.

현수는 우여곡절 끝에 '주먹 짱'인 우식과 친해지나,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어느 날 그의 일상에 처음으로 의미있는 대상이 나타난다.

버스에서 우연히 보게된 여고생 은주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애만 태운다.

우식은 거칠고 충동적이다.

욕망 제어 장치가 발동되지 못하는 반항아다.

주먹답게 대담하나, 비열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바로 어머니에 대한 것이다.

식모 역할만 하는 삼류 탤런트인 어머니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숨기고 싶은 부분이다.

그의 반사회적 성향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식은 선도부장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자퇴한다.

은주와 가출했다는 소문만을 남기고서.

현수는 첫사랑마저도 친구에게 빼앗겨 버렸다.

첫사랑의 금단 현상으로 더욱 표류하고, 선도부장 종훈이 득세하는 학교에서 현수는 시달림을 받으며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다.

교사들의 비호 하에 선도부장은 합법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학생들은 누구도 감히 덤비지를 못한다.

항거의 표시로 몰래 그에게 우유팩을 던질 뿐이다.

종훈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한 피라미를 잡기 위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모두가 공포감으로 침묵할 때, 참고만 있던 현수가 드디어 나선다.

첫사랑과 친구를 동시에 잃은 패배감, 배신감, 절망감, 적개심 등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이소룡처럼 쌍절봉을 휘두르며 한판 승부를 벌인 후, 현수는 학교를 떠난다.

현수는 억압된 감정의 분출을 통해 감정정화를 경험하게 되며, 새로운 자아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된다.

폭풍과도 같은 방황과 혼란 속에 고민하는 청소년기의 변증법적인 위기를 구체적으로 잘 보여준 영화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회적 모라토리엄의 역할 혼란을 모두 보여준다.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의존간의 문제도 대두된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제 2의 분리-개별화 과정이라고도 한다.

부모나 사회의 적절한 개입이 없으면 이들은 붕괴되거나 가출, 문란한 성행위 등의 행동 장애를 보일 수 있으므로 관심이 더욱 요구된다

겪는 동안의 잔혹함이 성숙한 성인이 되는 인고의 과정이 되기를 현재의 사랑스런 청소년들에게 바란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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