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회 문화관광위원들이 국정감사차 경주에 들러 ㄱ씨 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비가 새고 지붕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상황이지만 문화재보호법에 묶여 집을 새로 짓지도 고치지도 못한다는 ㄱ씨의 말에 너나없이 혀를 찼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어 팔고 이사 가지도 못한다는 그의 푸념에 의원들이 기막혀 했다.
지난 90년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추진돼 왔으나 '예산이 없다'며 정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된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9일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배경이다.
고도보존법은 '보존할 곳은 확실히 보존하되 이에 따른 주민 피해는 국가가 보상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까지 집에서 이상한 기왓장 하나만 발견돼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손하나 대지 못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사유재산권만 침해당했다. 이 때문에 경주 등지 고도(古都) 주민들은 문화재가 발견되면 쉬쉬하며 감추기 바빴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고도보존법의 제정으로 더 이상 문화재를 숨길 필요가 없게 됐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보호구역은 고도보존법상 특별보존지구와 역사문화환경지구로 재지정 된다. 문화부장관이 문화재 분포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시군구와 주민 의견청취-전문가 심의를 거쳐 보존의 가치가 큰 문화재가 있는 지역만 특별보존지구로 지정한다. 역사문화환경지구는 특별보존지구의 주변지역이 주로 지정될 전망이다.
특별보존지구는 현행 문화재보호구역처럼 건축물 신증축을 하지 못하는 등 행위제한을 받는다. 이 때 토지, 건물주는 문화재보존 사업시행자에게 토지와 건물을 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지구로 지정돼도 마찬가지로 토지, 건물 등의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고궁과 왕릉 인근의 역사문화환경지구에는 공원 조성 등 각종 편익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되 관광객이 쉽게 접근해 한껏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한나라당 김일윤(金一潤) 의원은 "애물단지였던 문화재가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으로 바뀌고 경주의 모습이 3~5년내게 크게 변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체를 문화관광부장관에서 지자체장으로 바꾼 것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천편일률적인 규제중심의 문화 행정이 아니라 고도의 지역 실정에 맞는 현실성 있는 보존 계획을 수립 시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물론 지자체장이 특별보존지구 지정을 최소화하는 등 주민의 이기에 영합할 경우 귀중한 문화유산이 멸실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토지, 건물에 대한 보상과정에서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주민과 문화재보존 사업시행자(시장-군수-구청장) 간에 마찰도 예상된다.
이런 곡절도 겪겠지만 사유재산에 대한 충분한 보상으로 문화유산을 국가와 주민이 함께 보존하는 길을 텃다는 점에서 문화재정책의 대전환이라 평가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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