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가장 나쁜 정치인은 누구냐?" 이런 물음에 프랑스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낸 문필가 클레망소(1841-1929)는 대답했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나쁜 정치인이라고 결정한 순간에 더 나쁜 정치인이 꼭 나오게 마련이니까".
지금 우리의 심경이 이렇다 할까. 그래서 정치판에 바꿔 바꿔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 대상자를 발표하거나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고, 각 정당들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겠다고 공언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공천작업의 실무 현장을 들여다보면 나쁜 사람을 걸러내는 것 외에 나이 먹은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또 하나의 큰 추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나이 먹은 사람은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젊은 사람은 좋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인가?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어느 세대고 간에 선인과 악인이 있을 수 있고 그 분포도 비슷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차라리 나이 먹은 세대가 검증기간이 길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감옥에 보낼 사람은 대충 다 보냈다는 점에서, 좀 더 안심이 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이다.
선거에서 젊은 세대를 후보로 내세우는 풍조는 비단 오늘만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16대 총선 때도 386세대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 386세대들에 의해 정치풍토가 한층 더 깨끗해지고 건강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어느 시민단체는 16대 국회가 각종 통계 면에서 역대 국회 중 최악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느 세대는 선하고 어느 세대는 악하다는 평가를 하는 것은 이기주의나 자기합리화의 소산일 수는 있어도 결코 과학적인 접근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계에 세대이야기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1970년대 초 세대론을 내걸고 재미를 본 YS와 DJ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철승 씨 포함)은 그때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일거에 당수(黨首)급으로 부상(浮上), 이후 30여년간 우리 정치를 좌지우지해오다 결국 두명은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들 개인으로서는 물론 성공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너무 장기적이었던 그들의 정당수뇌부 재임은 이 나라 정치풍토에 지역감정과 1인정당, 그리고 가신(家臣)정치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유산으로 남겼던 것도 유념해야 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성공은 개인차원만의 성공이었지 한국정치의 성공은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 '나이 먹은' 이란 표현을 몇 번 썼다.
물론 의도적이었다.
나이 드는 것을 '먹는다'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나라 말 뿐이다
나이 드는 것을 상실-퇴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섭취-축적으로 보는 시간관(觀)이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모든 함축을 내 몸속에 받아들여 피와 살로 삼는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말로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정치에서도 그랬다.
조선조 때 사람의 평균수명이 24세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황희 정승을 비롯하여 80세 이상의 나이에 벼슬한 사람이 177명이나 되었다
지금 우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6.5세(2001년)이다.
고령인구(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도 지난 2000년에 이미 7%를 넘어 좥고령화 사회좦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우리의 고령자들은 나라의 건국과정과 동족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보고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에도 몸소 참여한 소중한 경륜을 갖고 있다.
만약 경륜에도 세계랭킹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나이 지긋한 세대야말로 세계 1위일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경륜이 적은 사람들이 정치의 중심무대에 너무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을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비효율적인 인력배분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맨몸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60, 70대를 위해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주었습니까?고 물은 바 있다.
그리고 현직 육사교장이 작년 11월 생도들에게 50, 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훈시한 것이 최근 인터넷으로 전해져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참으로 좋은 말이요, 훌륭한 지적이다.
이것이 일회용의 외침에 그치지 않고 정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에 실천적인 울림을 가져다줌으로써 노-장-청의 전 세대가 국가발전에 격의 없이 동참하는 그런 결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최재욱.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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