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내 극장가에는 우리가 덮어두려 할수록 더 곪아가던 시대의 상처를 기억하게 하는 영화 두 편이 파죽지세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비극을 들추는 영화 '실미도'가 1천만 관객을 향한 행보를 내딛자마자,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 첫 주말 관객 기록에서 영화 '실미도'의 신화를 깨며 신기록 행진의 닻을 올렸다.
충무로 파워맨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사건 이면의 깊은 갈등이나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고 뚜렷한 이분법적 구도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타이타닉'을 전복시켰던 '쉬리'의 강제규 감독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새로움이나 전쟁에 대한 감독의 철학적 고민을 담은 영화라기보다는 감상적 가족주의에 호소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 두 영화가 지닌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숨가쁜 신기록 행보는 한국영화사에 숫자 이상의 뚜렷한 자취를 남길 여지가 충분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 이후 충무로의 투자 자본은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 같은 대작들을 겁없이 만들었다가 처절한 흥행실패로 혹독한 수업료를 치렀다.
그래서 이 두 영화를 기점으로 금전적인 손실보다 오히려 더 큰 악재로 작용했던 한국형 대작영화에 대한 패배감에서 벗어나 한껏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소 섣부른 전망까지 덧붙이자면 이 두 영화는 한국영화의 아시아 및 세계 영화시장 개척사를 새롭게 쓸 가능성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 영화가 가지는 큰 의미는 지난 90년대에 가볍고 튀는 코미디영화로 어른들을 쫓아냈던 충무로가 이제 10대에서 70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영화를 통해 다양한 세대와 정서적 교감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또 이 교감의 저변에는 '우리가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건 과거의 불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스크린에 아로새겨 일깨워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청산되지 않은 시대를 담은 과거의 기억은 '실미도'처럼 복수를 꿈꾸며 떠돌기도 하고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잠들지 않는 유령이 되어 레퀴엠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렇듯 불완전한 세상이란, 지난 시대를 돌이켜보면 늘 당하고 산 것 같아 슬픔이 많은 사회이며, 미래 시대를 내다보면 불안감이 앞서는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세상에 드러내고 따뜻한 빛을 받게 하는 소통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 전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화들이 바로 이같은 소통의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라는 점은 거짓과 사실의 은폐로 인한 상처로 앓고 있는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성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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