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월퇴직 최재윤 정화中 교사

졸업식 시즌이다.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카메라를 찰칵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다른 한 켠에서는 교복을 찢고, 서로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느라 고함과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밀가루로도 모자라 계란을 던지고 토마토 케첩을 뿌려댄다.

한마디로 엽기적인 퍼포먼스의 장이다.

사제간의 마지막 정을 나누며 눈물바다를 이뤘던 졸업식 장면은 이제 희미한 옛 앨범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학생들에겐 보다 별나고, 보다 재미난 추억거리를 만들려는 이벤트가 돼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태가 바뀌어도 졸업식에는 결코 빼놓지 못할 무언가가 언제나 자리한다.

마침과 새로운 시작, 그 사이를 흐르는 무언가가….

대구 정화중 최재윤 교사에게 올해 졸업식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 또한 졸업이기 때문이다.

34년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이달 말로 정년퇴직한다.

평교사로 학교를 떠나는 그에게 회한도 새겨지련만 그는 "허전함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더 크다"며 "졸업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제자들의 졸업식을 볼 때마다 이 아이들이 제발 바른 길로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든 사회로 발을 내딛든 학교에서의 가르침을 따라 성실한 일꾼으로서,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인재로서, 또 묵묵히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젊은이로서. 그게 교사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최 교사는 처음 교단에 섰던 70년대를 떠올렸다.

"예전의 졸업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죠". 당시만 해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배운다는 게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졸업 자체가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일이기도 했다.

신문을 돌리며 학비를 마련하고 달걀을 팔아가며 공책, 연필 등을 구해 학업을 잇는 학생들이 많았을 때였으니 졸업식은 단지 학교를 떠난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

그가 회상하는 당시의 졸업식은 '축제'였다.

먼 곳의 일가친척들까지 한데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자장면'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돈이 없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한다는 학생에게 어떻게든 졸업만은 해야 한다며 대신 수업료를 내주기도 했죠. 그만큼 그 때의 졸업장은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가 문득 책상 속에서 빛바랜 낡은 졸업앨범들을 꺼냈다.

"이 학생은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말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동그란 눈을 빛내고 있었죠. 시집가서 잘 산다고 하던데…". 옛 제자들의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되다 보니 간절하기만 했던 졸업장이 갖는 의미는 옛 일이 됐다.

졸업이 뭐 대수냐는 듯 졸업장조차 찾아가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격세지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그만큼 졸업식 풍경도 변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은 맞벌이로 바쁜 부모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붐빈다.

중.고교 졸업식장에도 부모들의 모습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진학을 실패해 창피하다며 참석 않는 학생들도 많다.

"예전의 졸업식이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저 지난 날들을 잊어버리기 위한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밀가루를 뿌리는 모습도 예전엔 봐줄 만 했지만 밀가루에다 마요네즈, 계란, 간장, 케첩까지 뿌려대며 교복을 갈가리 찢는 요즘 모습은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말리는 교사와 말다툼까지 벌이는 장면에서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는 것.

"졸업은 또 하나의 출발입니다.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거나 모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첫 걸음을 떼는 절차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 거죠".

이달 말 교단을 떠나는 최 교사. 벌써 퇴직 후 계획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세워놓은 듯했다.

"이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가질 생각입니다.

인생을 마무리하기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까. 아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삶의 한 단락을 끝내고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세상 어느 졸업생보다 더 당차보였다.

글.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 : 올해로 교단을 졸업하는 최교사가 제자들과 함께 낡은 졸업앨범을 들여다보며 새롭게 펼쳐질 앞날에 대한 다짐을 하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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