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제 국내 농업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팽배하다. 그 중에서도 직접피해가 예상되는 과수농가 농업인들의 불안감은 더하다. 반면 지역 전자.자동차부품.기계 업계는 반사이익이 클 것으로 보고 수출확대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과수재배농업인 현지표정
전국 최대 포도 주산지인 김천의 포도재배농가들은 "이제 포도 농사는 끝난 것 아니냐"고 큰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농가들은 "경쟁력 있는 포도 품종 선택과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 등이 있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김천시의 포도재배 면적은 2천600여ha, 재배농가는 5천500여 가구. 이중 시설포도가 300여ha에 850여 농가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노지 포도이다.
시설포도 3천여평을 짓는 박모(45)씨는 "당장은 잡초제거 말고는 일거리가 별로 없지만 수입개방이다 뭐다 이것저것 걱정이 앞서 매일 하우스에 나와 포도나무만 물끄러미 쳐다본다"며 "포도농사를 당장 그만둘 수도 없어 캠벨보다 경쟁력 높은 거봉포도로 품종전환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시설재배농가 상당수는 수입개방 위기가 높아지던 1, 2년전부터 이미 기름.비닐값 등을 절약하기 위해 보일러 가동을 않거나 줄이는 무가온 재배방식으로 전환해 생산비를 줄이고 있다.
대항면 대룡리에서 시설포도 3천평을 짓는 이진기(44)씨는 "농업인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FTA 등 최근의 변화를 걱정하지만 품질향상으로 경쟁력을 갖추면 걱정없다는 쪽으로 의견들이 모이고 있다"며 "지난해까지 제초작업 때 농약을 사용했으나 올해부터는 아내와 직접 풀을 베며 잔류 농약이 없는 고품질 포도생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농업 피해
칠레산 과일이 수입되면 국내 농업의 피해는 얼마나 될까. 정부는 지난 1999년 12월부터 FTA공식협상을 추진하면서 쌀·사과·배 등 3개품목은 완전 제외시켰고 신선 포도는 계절관세만 부과하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곡물류는 칠레가 수입국이고 축산물은 수입선 대체효과 등으로 피해가 없을 전망이지만 주로 과수 중심으로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복숭아 50%, 자두 75%, 포도가 43% 등으로 경북지역이 전국 재배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과일이 피해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시설포도는 칠레와 유통시기가 경합되고 우리나라 시설포도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직접 피해가 예상된다. 칠레산 포도의 수입유통시기는 3~6월. 주로 8~10월에 출하되는 국내 노지포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4~6월에 출하되는 가온재배 시설포도는 직접영향권에 포함된다.
경북도 'WTO/FTA 대책팀'은 10년간 품목별 피해액은 포도 직접피해 2천286억원을 비롯해 키위 347억원, 복숭아 273억원과 과일주스 가공품 등 개방에 따른 피해예상액인 간접피해 2천954억원 등 총 5천860억원으로 추정했다.
◇대책
정부는 한-칠레 FTA 협정 체결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농촌의 피해를 보상하고 농업경쟁력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향후 10년간 농림부문에 119조원을 투.융자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표 전부총리는 타 부처의 농림사업 예산을 합할 경우 전체 지원예산 규모는 186조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부총리는 특히 한.칠레 FTA협정으로 직접 피해가 예상되는 과수 농가를 위한 향후 7년간 지원액을 당초 1조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예상됨에 따라 경북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경북도는 지역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FTA기금 등 1조원 규모의 투융자 계획과 연계하여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한.칠레 FTA협정으로 직접 피해가 예상되는 과수 농가를 위한 향후 7년간 지원액 1조5천억원 중 34%인 5천267억원 가량의 사업비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시설포도와 복숭아, 단감 등 직접피해 품목 지원에 최우선을 두고 개별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설현대화, 규모화 및 생산기반 정비에 3천640억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또 광역유통시설 지원 등 생산자조직에 851억원(전국의 23%), 피해농가 경영안정 및 폐업보상금 등에 1천401억원의 사업비를 신청할 방침이다.
농업인들도 적극적으로 대책마련에 나섰다.
김천시 봉산면에서 시설포도 4천여평을 재배하는 김종일(63)씨는 "무가온 재배로 포도 출하시기를 약간 늦춰 포도의 단경기(7월20일~8월초)에 맞추면 칠레산 포도와도 마주치지 않아 수입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모면의 서호근(55)씨는 노지형 간이 비가림식 개발 등으로 포도농사에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 그는 "시설재배는 600평 기준에 생산비가 5천만원 이상 들지만 간이 비가림식은 2천5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며 "경쟁력있는 품종 개발 등에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연구위원 등은 최근 펴낸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칠레산 과일이 국내시장에 출하되면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불가피하므로 키 낮은 사과 밀식재배와 Y자 밀식재배(배)와 같은 저비용 과원관리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우 농협 김천시지부 차장은 "한-칠레 FTA에 대응하는 길은 공동출하.계산 등 철저한 공동유통 방식으로 농민은 양질의 포도 생산에만 전념하고 유통은 농협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라며 "김천 직지.남면농협의 경우 이미 이같은 방식을 시행,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경산시농업기술센터 김익겸 기술보급과장은 "전국 복숭아 재배면적의 12%(1천642ha)를 차지하고 있는 경산시 의 경우 재배면적의 약 40%가 '천홍' 한 품종에 집중돼 있어 홍수출하에 따른 가격하락 우려가 높다"며 "조.중.만생종의 품종 안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암 성주부군수는 "지역농업을 특화시켜야만 외국농산물에 대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성주 참외, 고령 딸기, 의성 마늘, 구미 화훼 등 전문적으로 특화시킨 품목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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