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의 폐위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김춘추의 할아버지인 25대 진지왕이 "나라를 다스린지 4년 만에 정사가 어지럽고 소행이 음란하므로 나라 사람들이 폐위시켰다"라고 적으며 도화녀와 비형랑의 이야기를 전한다.

진지왕이 미녀 도화녀에게 수청들게 하려하자 도화녀는 남편이 있다고 거절하면서 남편이 죽으면 허락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이후 진지왕은 쫓겨나서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는데, 진지왕의 혼이 나타나 도화녀와 정을 통해 비형랑을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진지왕의 폐위에 관한 이야기가 보다 자세하다.

'7세 설화랑'조에 따르면 "진지대왕은 미실 때문에 왕위에 올랐는데 색을 밝혀 방탕하였다.

사도태후가 걱정을 하다가 이에 미실과 폐위할 것을 의논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진지왕의 폐위를 주도한 인물은 미실이란 미녀로 임금만 진흥.진지.진평의 3대를 모셨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남성들을 뇌쇄(惱殺)시키고 신하로 부린 신라 최고의 미녀이자 여걸이다.

그녀는 진흥왕 사후 진지왕을 즉위시켰으나 진지왕은 미실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를 '화랑세기'는 '세상의 여론으로 미실을 황후로 봉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에게 빠져 미실을 총애하지 않았다.

미실은 그 약속을 어긴 것에 노해 사도태후와 함께 낭도를 일으켜 진지왕을 폐하고 동태자의 아들 백정공(白淨公)을 즉위시키니 그가 바로 진평대제이다(6세 세종조)'라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비형랑을 진지왕의 아들 용춘의 서제(庶弟)라고 기록하고 있어 진지왕이 비형랑이란 서자를 둔 것은 사실임을 전하고 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