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1정신 다시 세워야" 독립 유공자 후손 신성균씨

"독립유공자 후손이 아닌 이 세대의 어른으로서 부탁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3.1 정신의 횃불을 다시 들어주기 바랍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3.1절 85주년. '독도 우표와 위안부 파동'이 빚어진 요즘 독립운동의 피를 이어 받은 후손들은 어느 때보다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

1919년 3월1일 '기미독립선언문'을 발표했던 민족대표33인 가운데 기독교계 대표로 나섰던 신석구(申錫九.1875~1950) 선생의 손자 성균(聖均.78.대구 수성구 수성4가동)씨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평생을 독립과 민족 통일을 위해 헌신한 고 신석구 선생의 말년 20여년을 지켜 본 신 할아버지는 "옥중에서도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자신의 식구보다 동료 수감자 가족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염려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하지만 아직도 국론분열의 모습이 비쳐지는 이 사회가 염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정치사가 과거의 모순을 반복하는 것 같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그가 기억하는 모순된 역사의 한 단면은 해방후 1949년 있었던 '진남포4.19사건'.

이 사건에 연루됐던 고 신선구 선생은 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됐는데 이 때 재판장은 허정숙(후에 북한 문화선전상 지냄)으로서 그 부친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무료변론으로 유명했던 허헌(후에 북한 최고인민회의의장 지냄)이었다는 것. 신씨는 "한 때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이념 앞에서는 서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독립후손들의 어려운 삶을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4후퇴때 대구로 내려 온 신씨와 가족들은 이후 10년여 동안 궁색한 삶을 살면서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내세워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 자신들이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후손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던 1959년 전국 두번째 최연소로 사법서사에 합격하면서 한 가장으로 설 수 있었다는 신씨는 "몇년 뒤인 1963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은 뒤에야 주변에서 우리 가족이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의 방안 한가득 할아버지의 자료를 모아놓은 신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남긴 '인생의 세가지 생활'에 대한 문구를 가리키며 "'우인(愚人)은 현재를 일생으로 아는데서 생활한다'는 말을 젊은 세대가 잘 새겨 다시금 3.1 정신을 되살려 달라"고 당부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사진 : 3.1 독립운동가 후손인 신성균씨가 독립운동 33인중의 한분인 할아버지 신석구선생의 생전모습사진을 들어보이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있다. 김태형기자thkim21@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