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육대 정재걸 교수가 하루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들이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런 관행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그리스에서 학자 노예를 잡아와서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편안히 앉아서 배우고, 선생님은 힘들게 서서 가르치는 전통이 생겨났던 거죠. 당연히 학생들은 노예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었죠".
반면에,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스승이 되는 것을 삶의 최종적인 목표로 삼았다.
학문과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확충한 사람만이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학생들이 따를 수 있는 본이 되어주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었다.
당연히 학생과 학부형 그리고 사회는 선생님을 지극히 공경했고 이것이 참된 교육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 유학을 갔을 때, 강의실 안의 정경을 보고서 나는 깜짝 놀랐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서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학생은 두 다리를 앞에 있는 의자에 걸치고서는 거의 눕다시피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콜라를 마셔가며 수업을 듣고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러닝셔츠같아 보이는 티셔츠 바람으로 슬리퍼를 끌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우리의 사제관계의 문화는 얼마나 높은 것인가! 동아시아 사회에서 사제간의 아름다운 관계의 모범을 세운 사람들은 바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나는 10년 전쯤 이갑규 선생님의 논어 강의를 들으면서, 공자의 참모습을 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논어의 구절구절에서, 높은 이상을 품고 있는 사람의 아름다운 고뇌와 그의 인격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이란 직업을 갖고 있는 나였기에, 논어에 나타난 사제간의 아름답고 정겨운 관계가 나에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공자는 제자들을 마음깊이 사랑하였으며, 제자들은 선생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존경하였다.
그들은 둘러앉아서 농담을 나누고 거문고를 타면서 한가로운 대화를 즐기기도 하였다.
때로는 제자들이 더욱 힘써야 할 곳을 일깨워주고 추상같이 제자들을 꾸짖기도 하였다.
일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읽고 서로를 상승시켜주는 빛나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제자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흠모하였는가 하는 것은 공자 사후 제자들이 3년상을 치른 것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묘(孔子廟)를 찾았을 때, 묘 곁에 초라한 초막이 서있었다.
제자들이 머물렀다는 그 초막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선생님, 공자!'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양 것이라면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그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전통의 단절과 엄청난 문화의 퇴락을 경험하였다.
사제 관계에도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어떤 교실 벽에는 '선생님이 때리면 경찰서에 신고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어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왜 때리느냐며 선생님을 찾아와서 삿대질을 한다고 한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교육 현장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나는 어둠의 뒷면에 숨어있는 희망을 본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제 관계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핏속에 살아 흐르고 있다.
교육 현장에 있는 나는 지금도 대다수의 우리 학생들이 선생님께 얼마나 공손하고 예의바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학생들의 등불이 되고 계신지를 잘 알고 있다.
끝없는 교육의 위기에 대한 논의 속에서도 우리의 교육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공자와 그 제자들의 후예라고 할 바로 이들 훌륭한 선생님과 올바른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논어를 읽으면서, '행복한 선생님, 공자'와 만난다.
마음깊이 사랑하는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나도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행복한 선생님'의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홍승표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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