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예술가와 돈

옛 사람들은 '예술을 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예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두 말을 합쳐보아도 '예술 자체는 돈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순수예술을 겨냥하고 있다.

'순수'는 깨끗하고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걸 의미하므로, 세상이 많이 바뀌어도 그런 예술을 하는 경우 돈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국영화 관객 1천만명 시대가 열렸듯이, 대중예술은 사정이 다르다.

훌륭한 예술가가 돈방석에 앉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 극소수를 빼면 상업성을 띠는 예술가라야 돈과 연결되게 마련이다.

▲문화관광부의 '2003 문화향수 실태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미술.음악.무용.문학 등 순수예술 행사의 관람은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대중가요.뮤지컬 등은 다소 증가했다.

특히 영화 관람률은 무려 53.3%로 올라서 '영화 편식'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일찍이 '돈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라 했지만, 그 원동력이 예술세계의 치열한 창작정신을 해치는 것 같아 씁쓰레해진다.

▲예술인 10명 중 3명 이상(30.9%)이 창작과 관련한 수입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부의 '2003년 문화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월 20만원 이하도 17.8%나 돼 절반에 가까운 예술인들은 소득이 극히 미미한 형편이다.

게다가 이 조사는 비교적 알려진 1천947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 사정은 또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2000년 조사와 비교해도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가 10% 이상 늘어 안타깝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 예술인은 16.9%로 증가해 예술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다.

그런데도 예술 활동의 만족도에 대한 반응은 뜻밖이다.

10명 중 6명 이상(62.1%)이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인들은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예술의 길에 대한 긍지만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예술계로서는 여간 반가운 전망이 아니다.

그러나 순수문화예술은 밀리고 상업성을 띤 문화산업만 융성해지는 시대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예술의 본질이 '순수'에 있다면, 우리 주변에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정진하는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면,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에 빛을 뿌리는 촛불과도 같은 예술은 살아남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물욕과 담을 쌓은 채 예술을 향해 열정에 불을 지피는 예술가라도 너무 배고프면 쓰러지고 말 것이므로….

이태수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