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게요? 물이 들어왔을 텐데… 아직은 괜찮으려나".
여자가 시계를 보다 내게서 돈을 받아든다.
물이 차오르는 시간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섰던 바다가 수천 수만의 팔을 뻗어 엉겨붙으며 만나는 시간이다.
섬은 섬으로, 뭍은 뭍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별하는 섬과 육지가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 같은 눈물을 뿌리는 시간이다.
물가에 이르자 크릉, 밀려드는 물살을 겁내듯 차가 움찔거렸다.
두려워하지 마. 이제 돌아가는 거야. 나는 가만가만 차를 다독이며 사라져가는 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지금 가요".
나직이 대답하는 내 앞을 막아서는 바다.
춤추는 바다를 나는 그 파도를 닮은 손짓으로 밀어내며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서하진의 소설 '제부도'
"손 시리고 허리 아파두 어째야. 이게 내 삶인디. 그래두 이걸루다 딸년 대학 보내고 시집도 보냈당께. 이게 겁나게 보물단지제. 뭣땜시 자꾸 물어본당께. 먹을거나 좀 사들고 오제".
"저 여편네 딸이 대구에 시집갔당께. 경상도 사는 딸한테 보낸다고 저케 빨랑 캔당께".
"시방 좀 비켜보제. 아제야들이 오니까 석화가 눈을 다 감아버려".
햇살이 유난히 아롱대는 함평만 갯벌의 오전 한때, 갯마을 아낙네들의 구수한 입담이 한바탕 펼쳐진다.
갯벌을 무대로 억척스런 삶을 꾸려가는 이곳에는 뻘만큼이나 질펀한 해학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직 차디찬 바닷바람이 몸에 익은 남도 갯마을.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에서 새록새록 봄이 자라난다.
전남 함평은 매년 5월 열리는 나비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지만 함평군 끝자락에 위치한 함평만 갯벌도 그에 못지 않은 볼거리를 준다.
면적이 무려 4천700ha에 달하는 함평만 갯벌은 해제반도가 서해로 뻗어가며 만들어낸 천혜의 갯벌. 전남 무안군.함평군.영광군이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갯벌체험장이 따로 마련되어있어 가족끼리 생태체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곳 갯벌에서는 겨울을 지나 3월말까지 주민들의 석화채취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청정해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채취된 굴은 신선도가 높고 영양분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석화(石花)'는 굴이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 석화가 이곳 갯마을인 석두마을 주민들의 소중한 생업자원이다.
석두(石頭)마을, 돌머리마을이란 지명은 서해안에 맞닿은 육지의 끝이 바위로 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물이 빠지면 이 마을 아낙네들이 허리춤에 바구니를 차고 조새(굴 따는 도구)를 들고 갯벌로 향한다.
모래펄을 40~50m 정도 지나면 온 사방이 석화밭. 거무스름한 돌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돌에 싱싱한 굴들이 붙어 한몸을 이루고 있다.
아낙네들은 제각기 허리를 쪼아리고 조새로 석화 껍데기를 톡톡 쳐서 바구니에 담는다.
넓은 뻘에 30~40명이 흩어져 열심히 일을 한다.
이곳에서 반평생 넘게 보냈다는 박유래(56)씨도 아낙네 틈바구니에서 석화 채취에 여념이 없다.
하루 보통 4, 5시간을 일한다는 박씨는 오늘 따라 손놀림이 더욱 바쁘다.
대구 사는 딸한테 보내려고 빨리 캔단다.
하루 평균 6만~7만원, 많이 캘 때는 10만원이 넘는다.
박씨가 갯벌의 고마움을 하염없이 늘어놓는다.
이 석화채취로 5남매 대학교 보내고 장가.시집까지 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곳 아낙네 대부분이 이걸로 자식들 먹여살린단다.
"참으로 고마운 갯벌이제"라며 박씨가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굴 하나를 먹어보라며 낼름 입에 넣어준다.
짭조름한 굴에다 훈훈한 시골 인심까지 곁들여져 맛이 더욱 싱싱하다
뻘에 반짝이는 햇볕과 순박한 아낙네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폭의 선명한 동양화를 만들어낸다.
석화 채취는 석두리 주민 중에서도 어촌계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일반인은 석화를 딸 수는 없지만 채취 현장을 둘러볼 수는 있단다.
채취 현장을 구경하려면 무엇보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장화가 필수. 마을내 횟집에서 식사 한끼하고 부탁하면 장화를 빌릴 수 있다.
이 갯벌에선 바로 채취한 석화를 팔기도 한다.
1kg에 1만5천원 정도.
굴 채취 현장 옆에는 갯벌생태체험장이 따로 자리하고 있다.
물이 빠진 갯벌 위에 긴 나무다리를 놓아 관광객이 직접 갯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 다리 길이는 650m에 이른다.
기찻길 침목처럼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냈다 밀물 때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요술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매년 7, 8월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동시에 즐기려는 인파들로 북적인다.
갯벌에 둘러싸인 돌머리해수욕장은 낙조경관이 뛰어나 '함평 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해수욕장에는 초가집 원두막이 수십개 지어져 있어 해넘이 때는 마치 동남아 해안에 온 것같이 이국적인 맛을 준다.
뒤편엔 솔숲이 울창히 우거져 해변 경관도 일품이다.
아울러 돌머리해수욕장 인근에는 함평해수찜이 있다.
갯벌 체험 후 한번 들르면 한방에 여독을 풀 수 있다.
해수찜질은 갯벌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에 약초와 유황성분, 게르마늄이 든 돌을 달궈 넣은 탕에서 뜨거운 물을 수건에 적셔 온몸을 맛사지 하는 전통 목욕요법. 산후통과 피부병.관절염.신경통 등이 특히 효과가 있어 부인들이나 노년층이 즐겨 찾는다.
이 함평해수찜은 각종 언론에 소개돼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하다.
해수찜을 하는 곳은 신흥해수찜(061-322-9900), 함평주포해수찜(061-322-9489), 함평신흥해수찜(061-322-9487) 등 3곳이 있다.
그 중에서 신흥해수찜이 가장 규모가 큰데 특이하게도 대구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함평군청 문화관광과 061)320-3364.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가는길
88고속도로→광주→광산IC→광산네거리에서 좌회전→나주 방향 13번 국도→나주시→목포.무안 방향 1번 국도→함평군 학교면→함평.영광 방향 23번 국도→주포주유소에서 좌회전→1번 국도 따라 진행→주포항→돌머리해수욕장(약 4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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