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잠시 거주할 때의 일이다.
미국 달러로 물건 값을 계산하면서 머릿속에서는 그 가격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 돈으로 계산한 생필품의 가격이 왜 그렇게 비싼지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물건을 바구니에 골라놓고 계산대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돌아가 슬그머니 내려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은 6개월이 지나면서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비싼 미국물가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비싼 물가에 스스로 적응하는데 꼬박 6개월이 걸린 셈이다.
감자 16.2, 귤 12.2, 시금치 10.1, 고추 10.0, 파 8.7, 돼지고기 5.0, 도시가스 4.1…. 이 숫자는 지난 달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사는 물건들의 가격이 한 달 동안 오른 인상율이다.
이것은 일 년 동안이 아니라 한 달 동안 오른 물가상승률이다.
숫자에 둔감하더라도 단순계산으로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일 년 동안 물가 억제목표가 3%였으니 이미 한 달 동안에 물가가 일년 동안 올라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상승한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렇게 엄청나게 오른 물가에 적응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은 보통사람들에게 아주 교묘한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가 숫자이기 때문에 상당히 추상적이어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민감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도 물가가 오르는 사실을 모르지만 물가가 오른 후에 시장에 가보면 알 수 있어서 인플레이션은 항상 사후적이다.
또 인플레이션은 보통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한 것이다.
매월 받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면 같은 월급으로 살수 있는 물건이 적어지면서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그 부담이 잘 사는 사람보다는 보통사람들에게 떠넘겨진다.
물가가 오르면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물건의 값이 오르게 되어서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란 가진 것이라고는 살고 있는 집 딱 한 채이며 그 집도 완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 담보대출을 받아서 구입한 사람을 말한다.
평생 월급을 타면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내고 나면 외식 한 번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나라 중산층이다.
따라서 보통 중산층 사람들은 돈을 모아서 부동산과 물건을 사놓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물가상승으로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게 되지만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은 보통사람들에게 원하지 않는 저축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시중에 있는 화폐는 한국은행이 정부를 대신해서 발행하는 정부의 부채와 마찬가지이다.
화폐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채권자인 셈이다.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므로 정부가 갚아야 하는 채무가치는 떨어지고 국민들의 자산가치 역시 감소한다.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빚을 국민들이 대신 갚게 되는 것이며 이른바 강요된 저축이다.
지난달 대구, 경북 소비자 물가는 0.4%, 전년 동월대비 3.3% 상승하였다.
특히 감자, 귤,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과 도시가스,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서비스요금이 많이 증가하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물가 인상요인이 감소요인보다 더 크다는 점이다.
철강부족으로 시작된 원자재난은 모래, 석탄, 고철 등 전 부분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경기가 살아나면서 국제원자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가격도 급격히 상승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공산품의 가격도 필연적으로 오를 것이며 물가는 더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면 수출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출경쟁력도 하락하고 결국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물가상승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
물가가 오르면 이윤이 증가해서 생산이 증가하고 고용이 늘어나면서 보통사람들의 소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경기가 좋아지는 선순환과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물가상승의 충격을 흡수할 만한 경기호황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
국내소비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으며 미래 경기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설비투자도 7개월째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데 경기가 위축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도 줄어들어 경기가 악화되는 물가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김희호(경북대교수.경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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