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마라톤 경기가 여기 저기서 열린다.
대구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만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이나 된다.
못 먹던 시절엔 살 뺄 일도 없고 체력 관리할 여유도 없어 마라톤은 선수들의 일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기록경기로 여기던 마라톤 대회에 일반인들이 참가하여 자기 성취감을 맛보며 대회를 풍성하게 하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해진 증거가 아닌가 싶다.
평소 주말이면 등산이나 테니스로 소일하던 내가 선배의 권유에 따라 칠곡에서 열린 강북 마라톤에 별 준비 없이 참가한 것은 사건이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비록 10㎞ 단축 마라톤 코스였지만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처음 3㎞는 숨이 가쁘지만 뛸 만했다.
5㎞에 이르자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힘이 들면 가끔 쉬어가는 등산과는 달랐다.
계속 뛰어야 마라톤이지 쉬면 마라톤이 아니지 않은가. 7㎞ 정도에 이르니 그만 두고 싶었다.
'마라톤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났다.
아줌마들에게 추월을 당할 때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8㎞ 지점에서 스포츠 음료를 받아 마시니 갑자기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500m에서는 역주를 해서 초심자로서는 괜찮은 성적으로 골인을 했다.
50분 정도의 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마라톤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고생스러운 인생살이를 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마라톤이 다른 스포츠와 다른 것은 혼자서 끝까지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뛰다가 걸을 수도 쉴 수도 있지만 뛰지 않으면 정식 마라톤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탄핵정국으로 민심이 둘로 갈라져 있다.
총선이 곧 다가오지만 각 당의 정책이나 공약 같은 것은 판단의 대상이 되지를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가 자기들이 뛰어야 할 '마라톤'을 포기한 대가이다.
관중들은 더 이상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지 않는다.
딱딱한 아스팔트, 끼어드는 자동차, 밀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핑계로 마라톤을 포기할 수는 있어도 마음속에 꺼림칙하게 남는 '나는 실패한 정치인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응원도 받고 좋은 성적도 거둘 수 있었을 텐데. 관중만 우롱한 셈이다.
전영평 대구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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