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끝 안보이는'고교 파행'-(上)사교육비 경감대책 혼란

선택 중심 7차 교육과정과 이에 따른 2005학년도 입시제도가 고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과목별 표준점수 유.불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상당수 고교에서는 교사와 시설 부족으로 과목 선택권마저 제한받는 형편이어서 학생.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은 지난 2000년 초등 1, 2학년에 도입된 지 4년 만에 올해부터 모든 초.중.고에 적용됐다.

학생 능력에 따른 수준별 교육과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이 골자. 그러나 교사 수급, 여유 교실 등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졸속 추진돼 형식에 그치고 있다.

2005 입시제도 역시 대학별 성적 반영 방법, 표준점수 처리 방법 등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아 개인별 진학 지도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여기에 EBS 방송 강의에서 수능 문제가 출제된다는 소식까지 더해지자 고교 혼란은 극에 이르고 있다.

위성방송 및 인터넷 시설, 시청 시간 배분과 보충 강의 등 학교 차원의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 다음달부터 방송 강의와 수준별 보충학습 등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급박하게 추진돼 학사 일정마저 겉돌고 있다.

(上)학사 일정 뒤흔든 사교육 대책

16일 오후 대구의 ㄷ고교. 학교 관계자들이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따른 시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교무실에 모였다.

"EBS 수능강의를 시청할 수 있는 방송 시설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표 짜는 것이 관건입니다.

전적으로 방송 강의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고, 어떤 과목을 몇 시간이나 학교에서 틀어줘야 하는지 감을 잡기가 힘듭니다". (교무부장)

"일단은 학생들에게 교재부터 구입하게 하고, 구체적인 것은 방송을 보고 난 후 그때 가서 결정합시다". (교장)

"방과후 보충학습을 수준별로 나눠 대학 강의식으로 하라는 것도 지금의 학교 사정상 불가능합니다.

상위권이야 별 무리가 없겠지만, 하위권 학생들의 경우 누가 수업을 듣겠습니까". (3학년 교사)

결국 회의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30여분 만에 끝났다.

이 학교 교장은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발표된 후 매일 회의를 갖고 있지만,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ㅅ고교. 이 학교 역시 수능 강의 방송 등 사교육비 경감과 관련한 세부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다.

교무부장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맞추느라 일거리만 늘어 3월 학사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다소나마 기대를 걸었던 학교 관계자들은 후속 대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실이나 교사 여건이 좋지 못한 일부 고교는 "서울 지역 고교 중심으로 현장을 파악한 뒤 설익은 대책을 내놓는 통에 지방 학교들은 이에 맞추느라 필요없는 고생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구의 고교 관계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방송 수업,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 및 자율학습 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육부 방안에 다시 맞추려면 또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EBS 수능 강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ㄷ고 교장은 "보충학습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선별적으로 방송수업을 해야 하나 프로그램 선정 및 교재 연구 등에 따른 교사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ㄱ고 김모 교사는 "EBS 강의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한다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실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정규 수업에 보충학습, 방송 강의까지 학생들 학습 부담만 늘어났다"고 했다.

수준별 보충학습도 준비부족은 마찬가지다.

학생의 희망에 따라 과목이 개설되려면 그에 맞는 교사가 확보돼야 할 뿐만 아니라 수업 내용도 수준별, 맞춤형으로 준비돼야 하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경북의 한 고교 교감은 "수준별 반 편성은커녕 보충학습을 할 학생들이 한두 학급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학원 강사 활용 운운도 결국은 대도시에서나 나올 얘기지 지방 사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조두진.최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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