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내란선동 사령부 KBS"

어젯밤에도 KBS TV는 어김없이 촛불시위 장면을 내보냈다.

언론이 뉴스가 있는 곳을 찾아가고 현장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KBS라고 해서 그렇게 하지 말란 법도 없다.

도심에 촛불시위대가 있었으니 취재를 위해 찾아갔고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찍었을 뿐이다.

더구나 탄핵반대 촛불시위 뿐아니라 탄핵지지 집회도 똑같이 보도했다.

KBS로서는 이만하면 공평하지 않느냐고 따질 법하다.

그러나 왠지 야당은 편파방송이라며 항의 방문단을 보내고 300여 시민단체 회원 3천 여명은 '내란선동 사령부 KBS'란 피켓을 들고 공정하게 방송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술자리에 가보면 'KBS 나오면 열받쳐 꺼버린다'거나 'KBS안본지 오래됐다'는 비판의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렇게 되면 KBS가 공정한 방송국인지 친노(親盧)적 보도에 치우친 불공정 방송인지가 헷갈리게 된다.

TV보도의 공정성이란 결국은 시청자가 느끼는 기준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편파방송을 해도 잘한다고 평가해 주는 시청자그룹에게는 공정방송이 되고 공정방송을 해도 여당편들기로 느끼는 시청자그룹에게는 불공정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탄핵정국 보도를 둘러싼 KBS의 공정성 논란은 보도자체에 대한 분석적 평가보다는 시청자 그룹이 먼저 친노.반노로 갈라서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의 시비가 더 근원적인 본질이랄 수 있다.

다만 KBS가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 수준의 공정성 신뢰와 권위를 쌓아 왔었다면 이번 탄핵정국의 보도에 있어서도 방송국측의 공정논리와 형평주장 쪽으로 더 힘이 실리고 내란선동 세력이란 수모에 가까운 비판을 하는 쪽이 딴지걸기라고 비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KBS에 대한 국민의 불신논란은 이번에 갑자기 터져나온 것이 아니다.

KBS에 대한 시청률 거부 운동이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얼마전 KBS가 남의 집 골목앞에 카메라로 진을 치고 수모를 겪게 했던 바로 그 전두환씨가 정권을 잡았을때 KBS가 그의 정권 홍보도구로 전락했다며 국민적 저항을 받았을때였다.

그때가 1986년, 천주교 단체와 한국기독교 협의회가 시청료 거부운동을 벌였고 거꾸로 전(全)정권은 KBS의 방패 노릇을 하며 전국신문에 'KBS 시청료 거부운동'기사를 보도하지 말도록 지시했었다.

그해 4월29일에는 KBS 옹호를 받던 군사정권이 나서서 '금일부터 KBS TV 시청료 관계기사 및 KBS라는 표현도 일절 쓰지 말것'이란 기상천외한 보도지침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뒤 문민정부시절이던 1993년 7월에는 'TV를 끕시다'는 시청자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대구시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참사가 일어난 1995년에도 KBS는 정권의 종속적 지시를 벗어나지 못한채 재난방송의 즉시 생방송이란 공영의무도 다하지 못했다.

권력의 힘에 밀려 공영 방송의 구실을 제대로 못해 온 전과(前科)는 10년이 더 지난 오늘날 대통령 탄핵 보도에서도 아무리 '공정 했잖느냐'고 외쳐도 적잖은 시청자 집단으로부터 살아있는 권력쪽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잠재우지 못하는 원죄(原罪)로 작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KBS가 어젯밤 야당의 경선 중계방송을 못해주겠다고 버티다 시위군중이 극렬한 피킷을 들고 나온뒤 불가를 뒤집고 순순히 중계해줬다.

애초에 보도해줄 사안이 아니고 그 사유가 언론보도의 타당한 공익적 권한에 해당했다면 끝까지 보도안해줬어야 했다.

반대로 처음부터 중계해줘도 언론의 공익성을 침해하지 않는 사안이었고 그래서 어젯밤에도 허용한 것이라면 애초부터 받아들였어야 했다.

제1야당의 경선중계 보도는 총선이란 정치적 선택을 앞둔 유권자 더구나 시청료를 내는 국민의 입장에 서는 매우 필요한 정보가치를 지니는 사안이 될 수 있는만큼 명백히 공익성을 지닌다.

그걸 왜 못해준다 해주겠다 제호주머니속의 호두알처럼 자의적으로 주무르면서 친노적 보도에는 시간 안아끼고 뉴스내주느냐는게 반(反) KBS 시위군중의 감정이라 생각된다.

국민이 내는 시청료로 꾸려가는 공영방송이 누가 "살려주소"하면 전파내주고 "노정권과 코드나 맞추는 방송"이라고 비판하면 전파 안내주는 엿장수 엿판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탄핵난국해법은 어제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대로 모든 계층이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을 '조용히' 기다리면 될일.

탈법 촛불시위도 듣기좋은 꽃노래 되기전에 그만하고, 변호사들은 억울한 사람 값싸게 변론해 주는 일에나 전념하고, 의문사 진상조사위원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 진실조사나 애쓰라. 그들이 차분해지면 KBS도 요란하고 바쁜 일 없을거다.

이말은 거꾸로 KBS가 좀 차분해지면 그들도 더불어 차분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이기도 하다.

일부라해도 공영방송이 '내란선동 사령부' 소리 들어서야 되겠는가.

김정길(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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