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람의 몸은 전쟁터가 아니다

사스에 이어 조류독감이 동아시아 지역을 긴장시켰다.

우리나라에도 조류독감이 발생했지만 우리는 '불결한' 태국이나 월남의 그것이 더 가공스런 것이라 여겨 그곳으로의 여행을 꺼렸다.

이렇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해서는 진실된 판단보다는 주관적 편견이 앞선다.

이런 데서 은유는 시작된다.

은유란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언어행위이다.

수전 손택이 지은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펴냄)은 결핵.암.에이즈 등 치명적 질병에 대한 은유적 사고방식을 분석한다.

결핵은 무모하고 육감적인 사람들의 열정 과잉에서, 암은 자신의 분노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성적으로도 억압된 사람들의 열정 결핍에서 생겨난 것이라 여겨졌다.

19세기 초기 자본주의가 자본의 낭비나 에너지의 소모를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런 죄악을 결핵 이미지와 연결했다면, 20세기 후기 자본주의는 비정상적인 성장이나 에너지의 억제를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런 죄악을 암 이미지와 연결하기도 했다.

특히 암과 에이즈는 전쟁의 언어로 은유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암 세포들은 몸의 다른 부위를 '공격'한다.

나치들은 유태인 학살을 암의 종양 부위를 잘라내는 것과 동일시했다.

나치 자신은 외과의사이고 유태인은 암 종양이 되었다.

암이 내부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반면, 에이즈는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가상공간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자주 경험하는 오늘날, 스타워즈로 묘사되는 에이즈에 대한 군사적 은유는 더 그럴듯한 실감을 얻는다.

또 에이즈 바이러스는 정적이나 아프리카 인종, 동성애 집단에 대한 응징의 주체로 내세워지기도 한다.

질병에 대한 군사적 은유는 상황을 왜곡하여 환자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는 점에서 질병 자체보다 환자들을 더 잔인하게 괴롭힌다.

이 책은 질병에 대한 상식의 언어들이 환자들에게 폭력으로 작용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논리는 주변부 인종, 장애인, 여성, 동물 등에 대한 중심부 다수의 폭력을 해명하는 틀로도 응용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강옥 영남대 교수.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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