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퀵 서비스 라이더 이복웅.이상백씨-단1분이라도 더 빨리...

"이거 약속시간을 안 지키시면 어떡하나요. 오전 10시 정각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10분 가까이 약속시간에 늦은 기자는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야단(?)부터 맞아야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 생명인 라이더(Rider·퀵서비스 배달원)들에게 먼저 한방(?) 맞은 셈이다.

이복웅(64).이상백(43)씨. '빠른발 퀵서비스'의 투 라이더다.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와 중년의 라이더. 나이 차이는 스무살 가까이 나지만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두 사람은 투 캅스보다 더 마음이 잘 맞다.

어찌 보니 두 사람은 닮은 점도 많다.

이 회사의 라이더 100명 중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배달 성적도 그렇고 3년 정도 된 경력이나 자식이 셋 있는 점도 꼭 닮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흐름에 맞서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부르짖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퀵서비스의 편리함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화 한 통화면 '휘리릭' 하고 눈앞에 도착하는 신속성. '주문 즉시 배달'의 편리함은 이미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복웅씨와 이상백씨가 하루 평균 배달하는 물량은 제각각 20건이 넘는다.

많이 배달하는 날은 30건 가까이 올리기도 한다.

직선거리 5㎞내 배달(배달료 5천원)의 경우 의뢰 전화가 울리는 즉시 10분안에 물건을 가져와 10분내에 배송하는 것이 원칙. 늦어도 의뢰전화에서 배송까지 30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부릉부릉∼' 125㏄ 오토바이를 타고 이렇게 쉴새없이 달리며 올리는 순수익이 월 200만∼230만원 정도. 요즘 경기가 위축돼 영향은 받지만 그래도 수익이 상위권에 속한다.

"라이더 세계에서 별종이 아닙니까. 한 50정도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 나이를 얘기하면 다들 깜짝 놀랍니다".

이복웅씨는 사업을 하다가 쉬던 중 퀵서비스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원래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합니다.

한 30, 40년 탔지요. 50이 넘은 나이에도 배낭 메고 노숙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을 4차례 누볐습니다".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씨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 그것만큼 좋은 일이 있느냐고 했다.

3년전 수능시험을 치는 날 한 학생이 울면서 시험시간에 늦었다는 전화를 했을 때는 비상등을 켜고 신호등 무시하고 내달려 시험 시작 직전에 도착해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퀵서비스는 원래 사람이나 동물은 태우지 못한다.

그러나 답답한 심정으로 통사정하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상백씨는 차에 친 개를 실어오라는 의뢰 전화를 받곤 다리를 다쳐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개를 개집에 집어넣느라 손을 수도 없이 물린 적이 있다며 웃음지었다.

"정말로 사정이 급박한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지난번엔 신혼여행 가는 부부가 비행기 티켓을 집에 놔두고 와 7분밖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집에서 공항까지 티켓을 전해준 적도 있습니다".

이상백씨는 바이어와 만나는 회의시간을 바로 앞두고 중요한 계약서를 집에 빠뜨리고 온 사람을 위해 회의시간 전에 서류를 가져다줬을 땐 국가경제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명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엔 휴대전화를 집이나 술집에 빠뜨리고 와 가져다 달라는 전화도 적잖게 걸려온다.

"떡볶이, 무침회, 국수, 보쌈, 죽 등 음식을 배달해 달라고 전화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음식 배달은 안 하지만 단골 고객이 부탁하면 음식 값을 대신 지불하고 사서 배달까지 해주기도 한다고.

길이 막힐 때면 지름길인 골목길로 달리는 등 온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니 이들은 대구 지리를 거의 꿰뚫고 있다.

대구시의 총 181개 동 중 170개 동 정도는 머리 속에 숙지하고 있어야 배달하는데 힘들지 않다고. 화전동, 하서동, 수동, 대안동…. 대구 중구에 이런 동이 있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상백씨는 처음 배달을 시작했을 때 중요한 고객의 사무실 위치는 일일이 기록해 가며 암기했다며 적지 않은 공부도 필요하다고 했다.

"비 올 때가 제일 힘듭니다.

비 때문에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데다 길도 미끄러워 오토바이를 모는데 신경을 많이 써야 됩니다".

라이더들은 크고 작은 접촉사고로 다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상백씨는 신호를 기다리며 정지해 있는데 뒤에서 3.5t 화물차가 들이받아 몇 바퀴 굴렀는데 견고한 안전복 덕분에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시간이지만 사무실로 출퇴근할 필요도 없고 중간중간 자기 볼 일도 보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 속도를 빨리 내기보다는 교통흐름을 잘 알고 신호체계에 맞춰 물처럼 흐르듯이 운전하는 사람이 유능한 라이더로 꼽힙니다".

이들은 그러나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신속하게 배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쾌속질주하는 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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