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하향 평준화를 고집하는 나라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에게 가장 강렬하게 주는 인상은 무엇보다도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 같은 고층아파트 건물일 것이다.

공항에서 한강변의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 오는 길 양 옆으로 20~30층으로 숨막히게 쌓아 놓은 아파트 건물의 숲은 장관이다.

경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가는 동안에도 논 밭위에 쭉쭉 뻗어 오른 똑같은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보인다.

부산엔 아예 산꼭대기까지 이런 아파트 건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미 50년대부터, 지금은 없어진 공산치하의 동구에서는 스탈린 건축 양식으로서, 자본주의사회인 미국에서는 서민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하나같이 게토로 변하여 실패한 건축양식의 주거문화가 오직 한국에 와서는 어떻게 성공을 한 것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이것은 한국이 성공적으로 하향평준화가 된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한국인의 뇌리에 뿌리 박힌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많은 것이 아닐까? 즉, 남이 다 가니까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아니 갈 수 없다

즉, 한국인들은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결정하지 않고, 외부에서의 유행을 따라서 스스로가 원하는 것조차 결정한다.

자기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인간을 프랑스의 심리분석학자인 라캉은 '빈 주체(empty subject)'라고 불렀다.

바로 한국인들을 특정지음에 적절한 단어일 것 같다.

빈 주체로서의 한국인들은 콘텐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요즘 각 대학마다 우후죽순으로 콘텐츠학부가 생겨나서 정부에서 많은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것은 다행일까, 아닐까? 한국정부에서만 콘텐츠 사업 진흥원이다 뭐다 해서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콘텐츠사업지원 사업을 벌인다.

왜 그럴까?

콘텐츠의 중요성을 이제야 인식한 것이니까 다행일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사업을 벌이는 정부 관리들이나 대학의 교수나 처장님, 총장님들조차 무엇인가 착각 속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걷어 들인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나 생길 것 같다.

즉, 진정한 콘텐츠사업을 활성화하려면 결국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하는데, 그런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 획일적으로 하나같이 형식에 얽매인 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실정을 개선할 방도는 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정부에서 콘텐츠학부를 만든 대학에 정부 자금을 후하게 지원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선 콘텐츠학부라는 한국에만 있는 이름의 학과를 관장하는 교수들은 과연 콘텐츠학부가 무엇하는 곳인지를 제대로 이해나 하고들 있을까? 한 예를 들어보자.

시티 팍(CT Park)사업이라는 말을 한국에 와서 작년에 처음 들어 보았다.

나는 무슨 도시 공원인지 알았는 데, 그 말을 들은 지 한 6개월 후에야 그것이 cultural technology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개념적으로 한번도 정리도 검증도 안 된 말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말장난으로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따낼 수 있는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찾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남들이 하는 것이나 베낄 뿐. 빈 주체를 만들어 내는 교육이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 계속되는 한 한국에서 콘텐츠 사업은 발전할 수가 없다.

우선 하나 제의하겠다.

'문화 콘텐츠'라는 말도 요즘 많이 쓰이는 데, 이 개념이라도 한번 정리해 보자. 어떻게 이런 개념적인 정리를 통한 취지와 목적과 이념을 차근차근 정리하지 않고, 정부 기관들을, 대학 연구소들을 날조하여 막대한 예산을 입안, 편성하고 분배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의식 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정도의 교육과 국민의식 속에서 출중한 콘텐츠가 나올 수가 없다.

더욱이 이런 무리 근성의 국민들은 돌연변이처럼 출중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의 작품이 좋아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의식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의식의 또 다른 의미이니까. 하향평준화만을 고집하는 나라, 이런 사회에서 콘텐츠 사업은 잘 되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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