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2시30분쯤 봉화군 춘양면에 사는 이모(67) 할머니는 평소처럼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지만 별 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뒷산으로 날아오른 불씨는 삽시간에 바짝 마른 야산을 타고 들었다. 놀란 할머니는 동네 이웃들을 불렀고, 주민들이 함께 나서 크게 번지기 전에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큰 불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주민들이 잔불 정리를 소홀히 한 탓이다. 이렇게 시작된 불은 15시간 넘게 산림을 태웠다. 소방헬기 26대가 투입됐고, 공무원과 주민 1천500여명이 불끄기에 나섰다. 간신히 불을 끄고 돌아섰을 때엔 이미 산림 10ha(약 3만평)가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이곳에 새싹이 돋고 낙엽이 지려면 최소 30년 이상 걸린다.
작년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은 모두 39건. 산림피해는 약 14ha(약 4만2천평)에 이른다. 올 들어 29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50건으로 피해면적은 약 40ha(약 12만평)에 이른다. 특히 올해는 겨울, 봄 가뭄이 심해서 산불 위험이 크다고 판단, 도지사까지 나서서 산불방지 캠페인을 벌였었다. 그럼에도 불구, 올해 전국 산불 258건 중 약 5분의 1이 경북에서 발생했고, 피해면적은 약 10분의 1에 이른다.
특히 문제는 올해 경북도에서 발생한 산불 50건 중 방화는 단 한건도 없다는 것. 논.밭두렁이나 쓰레기를 태우던 중 발생한 산불이 23건에 이른다. 나머지도 성묘객이나 등산객 실수로 일어났다. 바꿔 말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산불이라는 뜻. 경북도는 2월 발표한 '산불예방 특별조치 대책'을 통해 논.밭두렁이나 쓰레기를 태우다 일어난 산불, 즉 예방가능한 산불이 발생한 경우 해당 '읍.면장을 직위해제'한다는 강경책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런 대책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산불을 낸 사람이 대부분 농촌 노인들이어서 형사처벌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단순히 산림피해를 산정하면 피해액이 수천만원에 그치지만 산불 진화에 동원된 인적.물적 비용과 이후 조림에 필요한 경비 등을 합치면 실제로 산불 한 건이 내는 피해액은 막대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산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경북도는 현재 산불감시원 2천155명을 고정 배치했으며, 고성능 무인감시카메라 5대, 감시탑 33곳, 감시초소 17곳 등 예방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력과 장비도 '게릴라전'처럼 벌어지는 산불에는 전혀 대응을 못한다. 주민들이 산불의 위험을 깨닫고 미리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지만 쓰레기 수거가 쉽지 않은 농촌에선 수시로 가정마다 쓰레기를 태우기 때문에 홍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가 쏟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경북도는 발생 자체를 줄이는 동시에 발생시 피해 면적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전국에서 최초로 만든 '산림정보 원격탐사시스템'이 바로 그것. 지난 2002년부터 2억4천여만원을 들여 한국지리정보학회에 개발을 의뢰했으며, 지난달 완성됐다. 종전엔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지휘본부에서 현장의 진행상황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항공사진 위에 등고선, 수계, 나무종류, 소방인력 배치까지 나타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장 상황이 손바닥처럼 훤히 보인다. 실제로 지난 16일 칠곡 동명면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 이 시스템을 활용, 진화 장비와 인력을 적절히 배치한 덕분에 초속 10m가 넘는 강풍에도 불구하고 피해면적을 최소화(약 5ha)할 수 있었다. 산림청은 이 시스템을 전국에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
문경시 산림과 박흥규(52) 보호담당은 "1, 2차에 걸친 치산 녹화기를 거친 산림은 잔뜩 울창해지고 낙엽도 가득 쌓여 있다"며 "아무리 입산을 통제하고 고도의 장비를 갖춘다고 해도 일단 산불이 발생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주민들이 주의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했다.
숲이 지니고 있는 공익적 기능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3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통계 결과가 나와있다. 경북도민 한 사람이 매년 190여만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박동식.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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