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세상과 동떨어져…"

조선 성종 때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성현(1439~1504)은 '용재총화'란 책을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역대 문장가들을 품평한 바 있다.

"최치원은 시구에 능하나 뜻이 정미하지 못하고, 김부식은 글이 담대하나 화려하지 못하다.

정몽주는 순수하나 종요롭지 못하며, 이색은 시와 글의 집대성이라 하나 비루하고 엉성한 모습이 많다.

성삼문은 문장이 호방하나 시는 잘 못하였고, 박팽년만이 경술, 문장, 필법을 모두 잘했기 때문에 집대성으로 추대된다".

▲도올 김용옥이 한 자락의 글을 게재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일로 문화일보와 앙앙거려 세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문화일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는 도올 고정칼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고 게재 곤란의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도올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고 중단을 밝히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한편 칼럼 원문을 직접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도올 칼럼을 줄이면 이런 내용이 된다.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일제를 통하여 수용된 대륙법만을 우리나라 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치졸한 발상이다.

헌법이란 정체(政體)의 역사적 체험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일시에 몇명의 제헌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선혈, 의혈, 분혈이 쌓아올린 민주의 운명이 9명의 해석자에 맡겨져 있는 것은 최대의 위헌사태다.

헌재 판결을 기다리라는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 도끼에 대한 기대가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민중은 일어서야 한다.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열변가다운 글이다.

법을 보지말고 법의 정신을 보자는 그의 말에 공감되는 구석이 없지 않다.

학자로서의 이상을 부르짖는 그 열정에 심장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한 글이다.

도올은 역사의 시간개념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것도, 제헌헌법의 시대상도 무시한다.

그의 주장은 세월을 무한정 뛰어넘는 것이다.

과거라는 바탕을 배제하고 오늘과 미래만을 주장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배를 한 순간에 선회시키려는 지나친 열정에 빠진 듯 보인다.

▲그는 '그릇되어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기도하다.

헌법재판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니, 탄핵을 결정하는 헌법은 새로 써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독선의 위험성이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쓰레기 밭이요, 똥 밭이다.

그러나 도올은 쓰레기도 똥도 용납지 않는 결벽주의자다.

그의 눈에 보이는 쓰레기와 똥만 용납지 못하는 애꾸눈일 수도 있다.

후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21세기 한국의 지성 도올, 학문은 컸으나 때로 세상과 동떨어졌다".박진용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