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7)-청화산(2)

2.

오후 7시 34분 제기전철역앞 한솔동의보감빌딩 옆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목표지인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상궁 청화원으로 향했다. 참가인원 총 14명.

지난번 산행을 마쳤던 늘재에서 출발해서 청화산- 갓바위재- 조향산- 고모령- 밀재- 대야산- 촛대봉- 불란치재- 버라미기재코스로 산행할 예정.

버스가 도착해서 일박해야하는 곳은 백두대간 종군기자인 허정균선배와 서울 마포 하늘 아래에서 우연하게 인사를 나눠서 알게 된 청화도사 이현섭 선배가 사는 청화원이다. 청화원 주인장인 이 선배는 산중턱에서 배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무예를 닦고 기공을 수련하는 소위 '도 닦는 분'이다. '반농반선'의 삶. 일하면서 지키는 박정희 유신시대가 아니고 농사지으면서 도닦는 '반신반인'의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고 봐야한다. 너무 치켜세웠나.

우리 대간팀 '다음' 카페 사이트에 팬이 된 그 선배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다가 문경 청화산 인근을 지나면 꼭 자기 집에 들러줄 것을 희망했고 이에 우리는 염치불구하고 그 초청에 응한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가 아니고 "공짜는 좋은 것이여". 뭐야.

유영래 대장은 버스 안에서 인사말을 통해 " 이번에 가는 속리산 자락은 토지나 기후 그리고 기와 인심, 모두 좋은 땅"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선비가 살 만한 곳을 찾기위해 전국을 떠돌아 다닌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이곳을 높게 평가했다나. 결국 청화원 원장인 이선배의 안목이 돋보이는구만. 안목이 좋은 것인가 운이 좋아 좋은 곳에 눌러 살게 되었는가. 이 선배 죄송합니다. 도의 수준을 의심해서.

전세버스는 중부고속도로 이어 영동고속도로로 달리다가 여주휴게실을 지나자 마자 바로 새롭게 뚫힌 여주- 충주고속도로를 거쳐서 충주로 빠져 나왔다.

어둠컴컴한 저녁 시간 창밖에는 너무나 밝은 광명으로 온 천지를 비추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 걸려있다. 엄밀히 말해 며칠전이 정보름이니 약간 찌글어졌겠지. 그러나 보름달과 진배없다.

이백의 달, " 오늘 살아 있는 사람은 옛날의 달을 보지 못한다 / 오늘 보는 달은 전에 옛사람을 비추었다 / 옛 사람과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보는 / 달은 이처럼 밝기도 하여라". 맞습니다, 맞고요.

얼마전 딸의 얘기가 떠올랐다. "아빠 나는 초승달이 좋아. 보름달과 반달은 싫어. 역시 초승달이 가장 예쁘잖아". 아이구, 아버지 닮아서 눈은 있고 예술성은 있어서. 그래서 제가 거들어주었죠. " 초승달은 미인들의 눈썹이거나 (마광수교수가 안절부절 못하는) 야한 손톱, 아니면 사나이 대장부들이 쏘는 활모습이라고 선조들이 표현했지"라고.

동요 '반달노래'나 전통미인 '보름달미인'은 요즘 아이들한테도 인기가 없나봐요. 솔직히 초승달은 '섹시걸'이고 보름달은 얼굴이 둥실하고 마음 넉넉한 '맏며느리'이고 반달은 '여염집 아낙'이지 아닐까 생각해요.

수안보온천 - 이화령터널을 통해 문경 가은면을 지나 농암면에 들어섰다. 이내 궁기리로 진입해서 냇가따라 가니 폐교된 봉암초등 궁기분교앞에 도착했다. 저멀리 거뭇하게 바로 올려다보이는 산이 백두대간의 주 능선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산 자락 마을. 얼마나 정기가 넘치고 좋을까. 나도 늙어 이런 곳에 살아야지. 제주도도 살고 싶고 강원도 두메산골도 살고 싶고 낙향하고 싶은 곳은 많고 . 걱정이다. 머리가 빠개진다. 뭐야. 머리나쁜 아이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구나.

차에서 내리니 청냉한 겨울공기가 완연, 온 몸을 감쌌다. 눈이 곱게 내려 마을과 산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보름달이 덩그렇게 너무나 환상적으로 하늘에 떠 있어 신선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한 정경이 연출되었다. 우주의 대표별 몇 개만이 등장해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가운데 어둑한 저녁 하늘에 흰 구름 사이로 밝은 보름달이 마구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누구에게 쫒기듯이 아주 급하게. 달이 급히 달려가다니. 아시죠. 원인은 달이 아니라 구름이라는 것을. 구름이 대양의 파도처럼 철썩이면서 떠 밀려 가는 것이 달이 마구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이죠. 상상해 보세요. 예술입니다, 예술.

그러자 허정균 선배가 "달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구름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고 딱 정리를 했죠. 선승(禪僧)이 다 되었구만. 이날 늦은 밤, 달과 구름이 펼친 향연은 너무 아름다운 선계의 모습이었다.

보름달의 매력은 기가 막히도록 너무 좋았다. 초승달이고 반달이고 그믐달이었으면 그림 완전 망쳤겠구만. 이헌태, 아까는 초승달이 좋다면서 난리를 치더니. 저야 원래 그렇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렇게 해서 대충 살랍니다. 잘 났다, 잘 났어. 우주적 시각에서 보면 다 부질없는 먼지와 티끌인데. 말은 맞다.

참고사항. 달이 가는 것으로 착각한 시인이 있더라구요. 그 유명하고 유명한 박목월. 그분 이름에 나무와 달이란 말이 들어가 있으니 오죽하겠어요. '나그네'. "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은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아, 오늘에서야 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겠구나. 유유자적, 수처작주.

달 구경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저녁 10시를 훨씬 넘기니 배가 쪼르륵 쪼르륵. 매서운 겨울 바람이 피부를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옥체를 보존하고자 나를 포함 일부는 이현섭 선배의 코란도차를 타고 청화원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다수는 산옆길따라 1킬로 떨어진 산속으로 길을 따라 나섰다. 이미 거창에서 올라온 거창도사 백신종 선배와 김길수 선배는 미리 도착해서 국화주를 거나하게 꺽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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