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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8일 새벽 해가 벌써 떴는데도 거실 이곳 저곳과 각 방에는 시체들이 즐비하다. 유영래 대장도 과음했는지 완전 시체다. 내일 모레면 환갑인데 연세를 생각하셔야지요. 전에 이같이 약한 모습은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지난 밤이 너무 원더풀했다는 반증이겠죠. 이로 인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을 하려는 계획은 휴지조각난 상태.
나도 잠을 밤새 한 두시간도 옳게 자지 못 했다. 아침 6시 반에 깨어나 앞마당에 나섰다. 소 운동장 만한 꽤 큰 넓이의 앞마당의 한가운데 아름드리 은행나무 한 그루가 너무나 외롭게 아니 기품있게 아니 멋있게 서있다. 영화 장소로 빌려줘도 너무 좋을 듯 싶다. 집의 사방이 산으로 푹 둘러 싸여있다. 자연은 특정인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고 했는데 이 산들과 자연은 이 선배의 재산 같았다. 한국 최고의 부자 가운데 한 명이 아닐까. 이헌태의 주장. "내 소유는 하나도 없지만 내것 아닌 것이 없다". 캬, 좋다.
소동파의 말씀을 다시 소개. "강과 산, 달과 구름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을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니 공의 새로 꾸민 정원과 이 대자연의 정원과 어찌 비교가 되겠소. 여름과 가을마다 정원 꾸미는데 드는 비용이며 그밖에 용역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공께도 이런 정원을 권하고 싶구려"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니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호연지기가 이렇게 생기는 구나. 강남 최고의 수십억짜리 아파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 마누라왈, "여보, 우리 아파트 옆에 논과 밭의 땅을 밟으면 자연과 교감도 이뤄지는 것 같애. 하루에 한시간씩 산책하고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 만약 아파트 많은 강남지역에 살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이런 행복을 누릴 기회가 없지않겠어요". 야, 우리 마누라 살림이 넉넉지 않아도 이렇게 남편에게 고마움을 간직하다니. 고생시켰는데도 감사하게 생각하니. 이헌태 웬 떡이냐, 땡 잡았다. 이헌태 정신차려라. 별첨하나. 마누라에 따르면 밟으면서 느껴지는 기운이 밭보다는 논이 더 좋다고 하네요. 무식한 이헌태로서는 그것까지는 나는 모르겠고.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시체들이 하나 둘 깨어났지만 여전히 모두들 쿨쿨. 백신종 선배는 일등요리사.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식사때 남은 밥에다 라면 넣고 김치 넣고 떡까래 넣고 짬뽕밥'국시기'를 15인분 이상 만들었다. 꿀꿀이죽 사촌이죠. 모두들 시골 닭에서 나온 자그마한 유정란 한 개를 깨어 넣은 뒤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운다. 속이 풀리는 것 같다. 아 인생이 행복해.
청화원 주인장은 앞마당에 서서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연엽산이지만 형상이 부처님의 누운 모습이라면서 자신은 와불산이라고 부른단다. 부처님 마음을 가지면 모두가 부처님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나. 고산 스님이 쌍계사주지시절 왈, " 산하대지는 비로자나불의 법신이요 초목함령은 석가모니불의 교화작용이라. 해와 달과 별은 모두 부처님의 눈이요. 쌍계사에 흐르는 물은 내 마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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