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낮 1시쯤에 갓바위재를 출발하고 난 뒤 봉우리를 몇 개나 넘고서 드디어 오후 2시쯤 산기슭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라면을 끓이고 김밥을 먹고. 이 라면 맛이 일품이다. 원기를 북돋운 뒤 다시 출발했다. 침묵을 지키던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분분하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능선길은 뾰족한 소등 마냥 폭이 좁아 발을 헛디디면 아래로 뚝 굴러 떨어지는 위험한 곳도 도처에 깔려 있었다. 환상적인 '설국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들었다. 군데 군데 너무나도 정겨운 산죽이 파릇파릇한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일년 내내 푸른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윤선도의 대나무가 아니고.
나무들은 앙상한 뼈와 가지만을 남긴 채 도를 닦는 '수도승'이었고 간혹 소나무들이 푸른 빛을 띠면서 '설중군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한가한 구름. 매서운 바람, 눈 덮힌 산, 발자국소리를 내며 걷는 이헌태. 모두 하나라도 빠지면 안되는 위대한 자연의 구성원.
임영조 시인의 '겨울 산행' 부분. "눈 오다 그친 일요일 / 흰 방석 깔고 좌선하는 산 / 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으니 / 몸소 찾아 갈 수 밖에 딴 도리 없다 / 가까이 오를수록 산은/ 그곳에 없다, 다만 /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로 남아 / 오랜 침묵으로 품을 세울 뿐 / (중략) /잡목들이 받쳐든 푸른 하늘에 / 간간 수묵을 치는 구름 / 눈짐 진 노송이 문득 / 잘 마른 화두 하나 던지듯 / 옛다! / 솔방울을 떨군다 / 덤불 속 멧새들이 화들짝 놀라 / 재잘재잘 산경(山經)을 읽는 소리 / 은유인지 풍자인지 아니면 해학인지 /들어도 모를 난해시 같다"
참조. '시골눈'하고 '도시눈'하고 크게 다르다고 하네요. 시골눈은 찰떡처럼 찰지다고 하네요. 도시눈은 공해에 찌들려서 그런지 빨리 쉽게 녹아 물로 변하는데 반해 산속눈이나 시골눈은 잘 뭉쳐진다고 해요. 밟아도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등산화와 발이 젖지 않은 것은 산속눈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산속눈 만세!.
오후 2시간 반쯤 출발, 가다보니 동쪽 방향에 놓여 있는 시루봉으로 연결된 대간의 지능선과 백두대간 주능선이 십자로 만나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남쪽방향으로 반시간쯤 더 나아가니 오후 3시 30분쯤, 이번 산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청화산(靑華山, 984미터)에 다다랐다. 정상에 서서 남쪽방향으로 보니 웅장한 속리산의 연봉들과 바로 이어진 한북금남정맥의 늠름한 전경이 황홀경을 연출했다.
갓바위재에서 청화산까지 산행시간은 대간지도에 따르면 대략 70분으로 적혀있지만 깊은 눈길이었는데다 위험한 낭떠러지도 도사린 힘든 암릉길이어서 그런지 시간을 거의 2배이상 잡아 먹었다.
청화산의 정상은 백두대간에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자그마한 바위 몇 개가 폼을 잡고 있어 다소 실망을 던져주기도 했지만 정상은 정상이니 할 수 없지 뭐. 청화산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 상주시 화북면을 각각 나누는 도 경계지인 모양이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 본격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드문 드문 암릉이 드러난 가운데 계단처럼 뚝뚝 떨어지면서 내려가는 가파른 능선길이었다. 능선의 끄트머리 바위에 서면 올라올 때처럼 조망이 좋아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즐겁게 내려갔다. 멀리 보이는 속리산의 풍경이 지난 산행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고 또 행복감도 다시 되살렸다.
오후가 깊어지는데다 날씨마저 쌀쌀하고 특히 사방이 탁 틔어진 능선길이어서 매서운 겨울삭풍이 온 몸을 계속 친다. 발걸음을 빨리 빨리 내딛었다. 청화산을 출발한 지 1시간 15분만인 오후 4시 45분, 드디어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늘재에 도착했다. 와, 살았다.
청화산에서 늘재까지 하산길은 너무나 지루한 코스였다. 만약 당초 예정대로 늘재에서 치고 올라갔다면 지쳤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간지도에는 대략 2시간 산행소요가 적혀 있는데 얼마나 오르는 길이 가파랐으면 오르막이 내리막의 2배나 차지할까. 그것은 급경사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전에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백운산을 2시간 반 계속 치고 올라간 악몽이 되살아 났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하산길이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백두대간 종주도 요령이 늘어 미리 코스를 보고 오르막이 힘들면 역산행을 해서 내리막으로 바뀌는 꾀가 늘지나 않는지. 모두 반성합시다.
꾀 피우고 잔대가리 굴리면 이는 곧 '반(反) 백두대간적 사고'입니다. 맞습니다. 이헌태의 신조어. 백두대간적 사고와 행동. 순수하고 큰 스케일의 사고와 행동으로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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